'스타트랙' 니셸 니콜스 타계…흑인 여배우 위상 높여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할리우드에서 인종차별이 완연했던 1960년대 인기 고전 TV 시리즈 '스타트렉'에 출연해 흑인 여배우의 위상을 정립한 니셸 니콜스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향년 89세 나이로 타계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니콜스의 아들인 카일 존슨은 지난달 31일 모친의 공식 사이트에도 올린 성명을 통해 "어젯밤 어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며 "그녀의 훌륭한 삶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그녀가 남긴 빛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태고의 은하계처럼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미래 세대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고 가르침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스는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우주선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통신장교인 이오타 우후라 중위 역할을 맡았다.
1966년 미국 NBC 방송이 황금시간대에 처음 스타트렉을 방영할 때만 해도 흑인 여배우가 주요 배역을 맡은 전례가 없었다.
이전에도 흑인 여성이 TV 드라마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하녀나 가사 도우미 등 비중이 미미한 단역에만 머물렀다.
이에 반해 스타트렉에서 니콜스가 맡은 우후라는 다양한 인종이 승선한 우주선에서 당당히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흑인 여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깼다.
그의 열렬한 팬 중에는 흑인 인권운동가 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흑인 최초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등이 있었다.
1968년 4월 암살당한 킹 목사는 생전 "흑인 여성이 TV 역사상 처음으로 판에 박히지 않은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고인은 2012년 백악관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을 접견했는데, 5살 때 그녀의 팬이 됐다는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와 '불칸 경례'를 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불칸 경례는 스타트렉 승무원들의 경례법으로 검지와 중지, 약지와 소지를 붙인 채 손가락을 세 부분으로 나눠 선서하듯 손을 올리는 동작이다.
니콜스는 또 스타트렉에서 제임스 커크 선장 역할을 맡은 캐나다 출신 백인 배우 윌리엄 섀트너와 키스신을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키스가 로맨틱한 것은 아니었다. 극중에서 외계인들이 염력을 이용해 커크 선장과 우후라를 억지로 키스하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니콜스는 미국 TV에서 인종이 다른 배우들끼리 나눈 역사적 키스 신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됐다.
니콜스는 2014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키스 신에 대해 "TV 드라마의 역사를 바꿨고,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도 바꿨다"고 말했다.
니콜스는 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여성 우주비행사인 샐리 라이드와 쥬디스 레스닉, 첫 흑인 우주비행사인 기온 블루포드 등을 선발하는 데에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항공우주박물관은 "니콜스는 스타트렉에서 보여준 선구자적 역할뿐 아니라 여성과 유색인이 NASA 우주비행사로 지원하게 하는 등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옛 USS 엔터프라이즈호 동료들은 니콜스의 영면을 기원했다.
조타수 히카루 술루 역할을 맡았던 일본계 미국인 배우 조지 타케이는 트위터에서 "선구적이고 탁월했던 니콜스에 대해 할 말이 너무나도 많다"면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친구여, 오늘 내 가슴이 먹먹하고 내 눈은 지금 당신과 함께 쉬고 있을 별들처럼 반짝인다"고 적었다.
그는 또 "나는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있었다"면서 불칸 경례 사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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