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성으로 뭉친 오늘날의 푸틴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러시아 전문가 "유년시절부터 싸움꾼…정치하며 서방 상대 환멸 키워"
"그의 성격상 우크라이나 전쟁 끌고가는 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
(서울=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거칠면서도 신중하고 계산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예상을 깨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배경에는 원한과 호전성으로 똘똘 뭉친 그의 개인사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17일(현지시간) '푸틴은 어떻게 치명적인 원한을 품게 됐는가'라는 제목의 윌리엄 타우브만 미 애머스트 칼리지 교수의 기고문을 실었다. 타우브만 교수는 흐루시초프 전기로 퓰리처상(2004년)을 수상한 러시아 정치 전문가다.
푸틴의 무모한 듯 보이는 전쟁 개시 결정은 원래 그의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타우브만 교수의 시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고립되면서 호전적으로 변했거나 어떤 질병에 걸려 비이성적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억울할 때면 남을 비난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푸틴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과정을 층층이 소개했다.
먼저 23살까지의 초기 생애로 거슬러 올라가면 푸틴은 '싸움꾼'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인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푸틴은 2차 세계대전에서 가족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은 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법을 터득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주먹질이었다.
옛 친구 회상에 따르면 푸틴은 누군가가 자신을 모욕하면 상대방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물어뜯고, 때려서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 유도 선수 출신이자 러시아 격투기 삼보 대학 챔피언까지 했던 그는 자신과 친구에게 시비를 걸어온 취객 2명을 눈밭으로 날려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푸틴의 초등학교 은사는 "푸틴은 자신을 배신하거나 못되게 구는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고 했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활동한 24∼37세 때에는 조직에서 그렇게 두각을 보이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동독에서 비밀경찰을 지근거리에서 살피며 상명하복과 조직 순응적 태도를 배우며 자신의 호전성을 성년 무대로 확장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드레스덴에서 러시아로 돌아온 푸틴은 KGB에서 익힌 기술을 십분 활용해 정계를 개척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까지 올랐고, 49살까지 '포스트 공산주의'에 대한 적응기를 갖는다.
그를 정계에 입문시킨 아나톨리 소브착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은 훗날 푸틴에 대해 "열심히 일하고 효율적이면서 규율을 지키며, 지략이 있으면서도 충성스럽다"고 평가한 적 있다고 타우브만 교수는 전했다.
하지만 푸틴은 이때 거의 모든 사람을 불신했다고 한다. 그의 평전을 쓴 스티븐 리 마이어스 뉴욕타임스 기자는 "당시는 푸틴이 정치인, 외교관 등과 폭넓게 교류하던 시기였는데, 그중에는 KGB 요원 출신도 있었다"며 "그는 누가 자신에게 충성할지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고, 배신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고 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도 푸틴의 자질은 큰 인상을 심어줬다고 한다. 그 결과 푸틴은 총리 자리에 앉게 됐고, 옐친의 뒤를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러시아 대통령을 지낸 50∼55세 때는 푸틴이 서방 세계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을 가슴 속에 품은 시기라고 타우브만 교수는 설명했다.
핵심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이었다. 푸틴은 서방 지도자들이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약속을 깼다고 주장하며 나토의 베오그라드 폭격과 구소련 국가 회원가입 승인을 비난했다.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 이후 친서방 지도자가 집권한 것도 푸틴의 불만 리스트 중 하나였다. "결국 워싱턴이 모든 격변의 배후에 있었다"는 게 푸틴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4∼5년을 뒷선에서 보낸 푸틴은 60세 때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러시아의 패권을 되찾고 소련시절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체첸 공화국 독립운동 탄압, 크림반도 강제 병합, 시리아 내전 개입 등이 그 사례인데, 이 때문에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기도 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도 본격화됐다. 푸틴은 2014년에 한 연설에서 "우리는 과거 수십 년 동안 미국과 친구가 되려 전례 없는 개방 정책과 협력 의지를 보였지만 미국은 러시아 분리주의를 지지했다"라며 자기 연민과 분노 섞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타우브만 교수는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정상회담까지 하며 '일시정지' 됐던 미국 비난 모드는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발동됐고, 호전성도 봉인 해제됐다.
급기야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끝내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로 진격시켰다.
푸틴은 침공 전 미국을 '히틀러 독일'에 비유하며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히틀러를 달래려 했지만, 우리는 오늘날 (미국을 달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우브만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푸틴이 축출되거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도해 승전을 선언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지만 모두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지금으로써는 전쟁을 계속 질질 끌고 가는 게 푸틴 성격에 가장 맞는 '가까운 미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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