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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다시 벼랑끝에 선 이탈리아 정치…조기총선 기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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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다시 벼랑끝에 선 이탈리아 정치…조기총선 기우나
드라기 총리와 반목 오성운동의 지지율 반전 겨냥한 승부수 분석
20일 드라기 의회 연설이 정국 향배 분수령…'회복 불능' 관측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정치 불안이 만성화된 이탈리아가 또다시 정국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인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작년 2월 내각 사령탑을 맡은 지 불과 1년 5개월 만이다.
이번 정국 위기는 의회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M5S)에서 잉태됐다.
범좌파에 속하는 오성운동은 14일(현지시간) 드라기 총리 내각 신임안과 연계된 민생지원법안 표결에 불참했다.
오성운동 당수인 주세페 콘테 전 총리는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 등으로 고통받는 가계 지원을 둘러싼 정책적 갈등을 이유로 들었다.
국가적 비상 상황이니만큼 재정 적자 규모를 확대해서라도 전폭적인 민생 지원을 실행해야 하는데 드라기 총리가 여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미 빨간불이 들어온 국가 채무와 재정 적자를 더 키워서는 안 된다는 드라기 총리의 소신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둘러싼 시각차도 두 사람 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유럽연합(EU)과 관계를 중시하는 드라기 총리는 무기 지원에 적극적인 반면, 콘테 전 총리는 국익과 맞지 않는다며 무기 지원을 강하게 반대해왔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명분일 뿐, 실제는 오성운동의 정치적 위기가 근본 배경이라는 게 현지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부패한 기성 정치 타파'의 기치를 내걸고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은 2018년 총선에서 득표율 32.7%로 원내 1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 변화에 대한 열망이 그 바탕이 됐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정치적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오성운동은 지난 3년간 한번은 극우당 동맹(Lega)과, 또 한번은 중도좌파 정당 민주당(PD)과 각각 연립정부를 구성해 국정을 이끌었으나 기성 정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고, 정책적으로도 그리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당 지지율은 하염없이 추락해 최근에는 4위권인 10%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추락하는 지지율과 더불어 의회 내 입지도 급속하게 쪼그라들었다.
최근에는 분당 사태까지 터지며 위기감이 증폭됐다.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이 대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하는 콘테 전 총리를 공개 비판한 뒤 수십 명의 상·하원의원들과 함께 탈당을 강행, 현지 정계에 충격파를 안겼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총선에서 전멸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내각 참여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고, 콘테 전 총리가 이러한 당내 여론을 받아들면서 드라기 내각을 흔들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전평이다.
오성운동으로서는 바닥으로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고자 판을 크게 한번 흔드는 정치적 승부수를 건 셈이다.
로렌초 코도뇨 런던정경대 교수는 AFP 통신에 내각에 반기를 드는 야당 이미지를 부각해 다시 민심을 회복하려는 오성운동의 셈법이 이번 정국 위기의 숨은 배경이라고 짚었다.
오성운동과 콘테 전 총리의 이러한 셈법이 들어맞을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시기에 이탈리아 정치가 다시 벼랑 끝에 몰렸다는 점이다.
드라기 총리는 오성운동의 투표 불참을 확인한 직후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을 찾아 정국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곧이어 내각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일단 드라기 총리의 사임서를 반려하면서 의회에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드라기 내각이 끝내 좌초할 것이라는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당내 강경파의 지지를 등에 업은 콘테 전 총리는 이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며 배수의 진을 친 상태고, 드라기 총리도 오성운동의 지지가 없다면 총리직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당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은 드라기 내각은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았다며 즉각적인 조기 총선을 주장하고 있다.
디 마이오 장관은 15일 이탈리아 RTL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드라기 내각과 현 연정이 지속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드라기 총리는 오는 20일 의회에 출석해 현 정국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다. 드라기 내각의 존속 여부도 이날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연정 구성 정당들이 드라기 내각을 떠받치기 위한 정치적 타협에 실패할 경우 끝내 가을 조기 총선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총선 시점은 10월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조기 총선이 현실화한다면 향후 3개월 남짓한 기간 정치·정책 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총선까지 국정을 대행할 과도 내각이 민감한 정책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 수립과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가뭄·폭염 등의 기상이변 등과 같은 현안 대응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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