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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으로 후퇴한 美 낙태 이슈…정치사회 전반에 큰 파장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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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으로 후퇴한 美 낙태 이슈…정치사회 전반에 큰 파장 예고
공화당 주도 州 절반이 금지할 듯…원정낙태·불법시술 횡행 우려
11월 중간선거 핵심쟁점 부상…정치적 공방·사회적 혼란 격화 전망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 연방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약 50년간 유지되며 사실상 연방 법률과 같은 역할을 해온 '낙태권 인정' 판결을 공식 폐기함으로써 미국에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의 판결은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을 폐기한 것이어서 이제 낙태를 합법적으로 인정할지 여부는 주 정부와 의회의 몫으로 넘어갔다.
당장 절반에 가까운 주(州)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조처를 할 것으로 보여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불법 시술, 원정 낙태가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낙태권 보장 여부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 이슈여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야간 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州 권한으로 넘어간 낙태권…절반이 사실상 금지할 듯
이날 연방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헌법에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도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 된다.
1973년 1월 나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본 임신 약 24주 이전까지는 낙태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판례를 파기함에 따라 이제 결정권은 주 정부와 의회의 몫으로 넘어갔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미 구트마허연구소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가 무효화할 경우 미국 50개 주 중에 절반 남짓인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대부분 낙태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우위에 있는 곳들이다.
26개 주 중 22개 주는 ▲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에 낙태를 금지한 법이 있었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시행하지 못했거나 ▲ 판례 파기 시 곧바로 낙태 규제를 시행할 수 있는 '트리거 조항'을 담은 법을 마련했거나 ▲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 등 규제를 갖고 있다.
또 플로리다, 인디애나, 몬태나, 네브래스카 등 4개 주는 판례 파기 시 낙태를 금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로 분류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리거 조항을 가진 주가 13개 주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원정 낙태·불법시술 횡행할 듯…큰 혼란 예상
대법원의 이날 판결로 낙태 관행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구트마허연구소의 분석으로 볼 때 절반가량의 주는 임신 후 일정 기간 내 낙태를 허용할 것으로 보여 미 전역에서 낙태 자체가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낙태 규제가 주의 권한으로 넘어감에 따라 주별로 들쭉날쭉한 주법이 시행될 공산이 크다.
상당수 주는 임신부의 생명 위협만 낙태 사유로 인정하고 근친상간이나 강간에 의한 임신 역시 낙태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낙태가 금지된 주에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가 허용된 주로 낙태를 위해 이동하는 원정시술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임부의 불편이 커지는 것이다.
WP는 텍사스주에서 원정시술을 갈 경우 가장 가까운 시술소까지 870㎞를, 루이지애나주의 경우 1천70㎞를 이동해야 한다고 전했다.
원정시술이 여의치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허가 시술이 횡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 의료인이 아닌 경우 임신부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불법 시술인 탓에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
임신중절이 가능한 알약을 이용하기 위해 알약 밀거래가 성행할 가능성 역시 있다.
WP는 대법원 판결 직후 트리거 조항이 있는 많은 주의 낙태 클리닉은 시술 일정을 잡으려는 이들로 넘쳐났다고 보도했다.
또 클리닉 측은 더는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없다면서 낙태가 금지되지 않은 수백 마일 떨어진 주의 클리닉 리스트를 배포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치적 공방 거세질 듯…중간선거 쟁점 급부상
미국이 통일된 낙태 규정을 가지려면 연방 의회가 낙태권 보장을 위한 별도의 법을 마련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는 낙태 문제를 둘러싼 시각차가 워낙 커 사실상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입법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미 언론의 평가다.
기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50년 가까이 입법적 뒷받침 없이 판례 형태로만 유지된 것은 그만큼 의회 내 합의 도출이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격화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당장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대법원의 판결이 모욕적이고 여성을 실망시키는 일이자 미국인의 권리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공화당을 겨냥해 "미국 여성이 어머니 세대보다 자유가 줄었다"며 "급진적 공화당이 건강의 자유를 범죄화하기 위해 십자군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낙태 금지를 주장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을 따른 것이자 오래 전에 했어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특히 이 문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득표전에 영향을 미칠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낙태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례로 마켓대가 지난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존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에 대해 찬성 의견이 31%인 반면 반대 입장은 69%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으로선 분위기 전환을 시도할 유리한 소재가 될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함께 조사해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3%(민주 78%·공화 49%)는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을 옹호하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염병 대유행 지속에다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 등 각종 악재로 바이든 대통령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 이번 판결이 반전에 필요한 결정적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jbr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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