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 찌르는 발트 소국 리투아니아의 '송곳 외교'
자국 통한 '러 화물운송' 제한…작년엔 '대만 대표처' 개관에 中반발
옛소련서 독립·뿌리깊은 '반러'…친서방 노선속 '제2의 화약고'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유럽 북동부 발트 3국 중 한 곳인 인구 280만명의 소국 리투아니아가 중국에 이어 러시아에 대응해 '대담한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의 규모나 국력을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열세인 터라 이들 강대국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리투아니아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리투아니아는 18일(현지시간) 자국 영토를 경유해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주(州)로 가는 화물 운송을 대폭 제한했다.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로 둘러싸인 데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 항공기의 영공통과를 금지해 육상 운송을 끊으면 발트해 항구만이 유일한 통로가 된다.
EU와 나토에 포위된 자국 영토 칼리닌그라드를 옥죄는 리투아니아의 발표에 러시아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21일 언론보도문을 통해 리투아니아 측에 화물운송의 즉각적인 복원을 요구했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대응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며 경고했다.
러시아의 허를 찌른 리투아니아의 이번 결정은 뿌리 깊은 반러시아 정서가 그 배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리투아니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과 옛소련의 탄압을 겪은 아픔이 있다.
이태림 국립외교원 교수는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와 함께 유럽에서도 가장 반러시아 정서가 강한 국가 중 한 곳"이라며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옛소련에서 독립했던 역사적 배경 등의 영향으로 '러시아색 지우기'에 몰두해왔다"고 설명했다.
1991년 옛소련에서 독립한 뒤 2004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가입한 이후로는 철저한 친서방 노선을 추구해왔다.
동시에 러시아와 외교적 마찰이 빈번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 사태 당시에도 경색 국면이 심심찮게 연출됐다.
서진석 한국외대 EU연구소 교수는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이유로) 러시아를 '공공의 적'이자 '악의 근원'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리투아니아가 대규모 원전을 보유했었지만 당시 EU 가입을 위해 원전 폐쇄를 단행할 정도로 친서방의 일원이 되는 데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중국에도 반기를 들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었다.
지난해 5월 중국 신장 위구르족 정책을 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이 리투아니아 의회를 통과했다. 같은 달 중국과 중·동 유럽 국가 간의 17:1 경제협력체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9월에는 샤오미 등 중국 업체의 스마트폰에 검열기능이 탑재돼 있다며 중국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권고했다. 유엔에서 중국의 홍콩국가보안법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낸 곳도 리투아니아다.
11월엔 리투아니아는 중국의 반발과 경고를 충분히 예상하고서도 수도 빌뉴스에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만대표처'를 개관했다. 다른 유럽국가나 미국에서는 중국을 의식해 대만 대표부를 타이베이 대표처 등으로 우회해 호칭하지만, 리투아니아는 대만대표처로 명명했다.
중국이 강하게 경고했지만 보란 듯이 대만에 의원 대표단을 보내 우호를 과시했다.
올해 9월에는 대만에 대표사무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리투아니아는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현실적으로 경제 분야에서 대만과 더 공유면이 크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중국에 맞서는 최전선에 섬으로써 미국과 EU의 지지를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리투아니아의 칼리닌그라드에 대한 화물운송 제한 조처도 이런 대외 전략의 연장선인 셈이다.
실제 이번 결정에 대해 미국은 리투아니아를 지지한다고 확인하면서 나토 5조에 따라 회원국인 리투아니아에 집단방어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화답했다.
다만 자칫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러시아 영토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 발트해 연안이 '제2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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