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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 상징' 아사카와 형제 답사에 일본인 신청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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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호 상징' 아사카와 형제 답사에 일본인 신청 몰려
주일한국문화원 주최…30명 정원에 412명 신청해 추첨
조선의 도자기 사랑한 형제에 '최초 한류팬'이란 별칭도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주일한국문화원(원장 공형식)은 한일 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아사카와 형제 답사 행사를 형제의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18일 개최했다.
30명 정원으로 모집한 이 행사에 412명(일본인 387명·재일 한국인 25명)이 신청해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정했다고 문화원 측은 19일 밝혔다.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다쿠미(1891∼1931) 형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도자기 연구와 산림녹화에 매진한 인물이다.
40세의 나이에 요절한 다쿠미는 망우리공원묘지에 묻혔고, 2012년에 그의 공적을 기린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가 개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답사 행사 참가자들은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아사카와 형제 자료관과 생가터, 아사카와 가문 묘소 등을 방문했다.
한 일본인 참가자는 "자료관 입구에서 '최초의 한류 팬'이라는 '백자의 사람' 영화 포스터 타이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1913년 경성 남산심상소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한 노리타카는 조선 도자기에 심취해 1946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700여곳을 답사하며 조선 도자기의 역사를 정리했다.
노리타카는 소장했던 도자기와 공예품 3천500여점을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된 국립민족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다쿠미는 형의 권유로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임업기사로 일하며 황무지였던 한반도의 녹화 사업에 헌신했다.
70대 여성 참가자는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아사카와 형제에 대해 알게 됐고 책과 영화를 보고 감동해 망우리공원묘지에 있는 다쿠미의 묘소에 방문한 적도 있다"며 답사 행사에 참가한 이유를 밝혔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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