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 마리우폴, 지옥보다 끔찍…삶 통째로 사라져"
"비둘기로 국 끓이고 치과서 마취제 없어 그냥 발치"
러 이동식 TV로 선전…콜레라 등 전염병 창궐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마리우폴은 지옥보다도 끔찍했어요. 그곳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습니다"
지난달 말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 도망쳐 나온 블라디미르 코르치마(55) 씨가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전한 말이다.
마리우폴에서 나고 자라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일했던 그는 고향을 떠난 후 지금은 수도 키이우의 한 지원센터에 머물고 있다.
50만명이 살던 마리우폴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주민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면서 현재는 9만명가량이 남아있다.
그는 휴대전화에서 부서진 아파트 사진 한 장을 찾아 취재진에게 보여주며 "내 집이었지만 이제는 폐허가 됐다. 내가 쉰다섯에 노숙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탄했다.
키이우 지원센터에서 심리상담가로 일하는 안나 차소브니코바 씨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마리우폴을 떠나온) 사람들이 이전의 삶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지 못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이제 앞날을 생각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마리우폴에서는 가스와 전기, 식수 등이 부족하고 통신 서비스도 먹통이 돼 고립된 상황이다.
코르치마 씨는 마리우폴에 남은 형제가 신호를 잡으려고 도시 외곽으로 나왔을 때만 연락이 닿는다고 했다.
러시아는 통신이 끊긴 마리우폴에서 침공 정당성을 선전하는 심리전을 진행 중이다.
대형 스크린 여러 개가 달린 차량을 곳곳에 세워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내용의 뉴스 코너와 정치 논평 프로그램 등을 내보낸다.
지난달 초까지 마리우폴에 살았던 카테리나 씨는 "러시아는 스크린을 (마리우폴의) 모든 주요 광장에 설치했다"며 "어머니와 내가 음식과 식수를 얻으려고 줄을 섰을 때 우리가 어떻게 나치에게서 해방됐는지 들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4월 가족을 마리우폴에 남겨 두고 키이우로 왔다는 테탸나는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주민에게 지원금을 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수령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우크라이나 여권을 러시아 여권으로 맞바꾼 사람만 혜택을 신청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군에 포위돼 집중 공격을 받았던 마리우폴의 인도주의적 현실은 여전히 처참하다.
러시아 NTV는 지난달 말 "폐허가 된 마리우폴 주민이 모닥불을 피고 비둘기로 국을 끓이고 있다"며 "마리우폴 대부분 지역에서 전기와 물이 부족하다"라고 보도했다.
주민 올레 씨는 지난달 초 마리우폴을 떠나기 직전 치통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동생을 치과에 데리고 갔다가 마취제가 없어 동생이 마취 없이 이를 뽑았다고 했다.
기본물자와 의약품이 부족한 터에 급성 설사와 탈수를 일으키는 콜레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름이 되면서 기온이 올라가 마리우폴에 방치된 시신이 빠르게 부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테리나 씨는 "(시신 때문에) 마리우폴 어디를 가든 지독한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페트로 안드류셴코 마리우폴 시장 보좌관은 "최근 두달 간의 전투로 2만2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마리우폴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담당자는 사망자가 최대 5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이달초 안드류센코 보좌관은 "마리우폴 주민들이 콜레라와 이질 등 전염병에 취약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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