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브렉시트 관련 협약 일방적 변경 예고…EU "재협상 없다"
북아일랜드 협약 일부 폐기 법안 발표…EU 법적 대응 나설 듯
벨파스트협정 흔들릴 우려에…미국, 양측에 대화 재개 촉구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이 결국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관련 협약의 일부를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법안을 발표하며 유럽연합(EU)과의 충돌 위험이 더욱 고조됐다.
영국 정부는 13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협정의 일환인 북아일랜드 협약을 일부 변경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지만 이 협약에 따라 EU에 잔류한다.
새 법안은 영국 본토 섬에서 북아일랜드로 상품이 넘어갈 때 통관·검역을 건너뛸 수 있게 하고, 분쟁조정을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아닌 독립 기관에 맡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이는 교역을 개선하고 관료주의로 복잡해진 절차를 단순화하기 위한 비교적 사소한 조치라고 말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은 "북아일랜드가 처한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이라며 "이 법안은 벨파스트 협정을 지키고 북아일랜드 정치 안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1998년 체결된 벨파스트 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은 북아일랜드 평화의 기반으로, 아일랜드섬 내의 자유로운 인적·물적 왕래를 보장한다.
트러스 장관은 "EU와 협상할 생각이 있다"면서도 "그쪽에서 북아일랜드에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협약 내용을 변경할 의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경 입장을 밝혔다.
영국은 존슨 총리가 2019년 협약에 직접 서명했으나 지금 와서 일방적으로 내용을 바꾸려는 것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불가피성 원칙'에 따라서 국가의 본질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으면 합의를 어길 수 있는데 지금은 영국의 이익인 북아일랜드 정치 안정을 지키려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아일랜드에선 지난달 초 선거가 끝났지만 여태 의장 선출과 행정부 구성이 되지 않았다.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이 사상 처음으로 제1당이 되자 연방주의자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은 북아일랜드 협약이 전면 재검토되지 않으면 연정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벨파스트 협정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정당들은 연정을 해야 한다.
EU 측 브렉시트 협상 책임자인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부집행위원장은 재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세프코비치 부집행위원장은 "재협상은 비현실적이며, 재협상을 하면 북아일랜드 주민과 기업이 법적인 불확실성을 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협약 위반과 관련해서 영국을 상대로 법적 절차를 밟다가 협상을 위해 중단했는데 이를 재개할 것을 검토한다고 말했다.
사이먼 코브니 아일랜드 외무부 장관은 영국의 조치는 국제법 위반이며, 이번 법안에 담긴 내용은 EU의 작년 10월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미국의 우선 관심사는 벨파스트 협정의 혜택을 보호하고 북아일랜드 주민을 위해 평화, 안정, 번영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양측에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벨파스트 협정을 흔들면 미-영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북아일랜드 협약은 2021년 1월 본격 발효한 브렉시트 이후에도 북아일랜드를 EU 단일시장에 남겨두는 내용이다.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이지만 본토 섬과는 바다로 분리돼있고 아일랜드와는 국경이 맞닿은 특수성 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협약에 따라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건너오는 상품이 통관과 검역을 거치게 되자 북아일랜드 연방주의자들은 본토와 사이에 새로운 장벽이 생긴 데 큰 불만을 품게 됐고 민족주의자 진영과 충돌했다.
이에 영국과 EU는 작년 가을부터 협상에 나섰고 EU는 상당 부분 양보하는 제안을 했으나 영국은 문제가 더 악화할 것이라며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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