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죽이는 '킬러 T세포', 암 전이하는 통로도 파괴
림프관, 죽은 암세포 '종양 항원' 흡수 → T세포 공격 자초
대장암, 유방암 등 면역치료 개선에 도움 될 듯
스위스 제네바대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암은 혈관 등 '종양 기질'(tumour stroma)에 의존해 성장한다.
예컨대 혈관이 없으면 암세포의 증식에 필요한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한다.
암세포가 전이하는 데 필요한 림프관(lymphatic vessel)도 종양 기질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일단 암 종양의 내부나 주변에 림프관이 형성되면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면역 항암치료에서 암세포 공격에 쓰이는 '킬러 T세포'가 종양의 림프관까지 파괴해 암의 전이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발견은 림프관 형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대장암, 흑색종, 유방암 등의 면역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대(UNIGE) 의대의 스테파니 후귀스 병리학 면역학과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8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논문으로 실렸다.
림프계는 암세포의 주요 전이 루트다. 특히 림프절은 전이성 암세포 무리의 중간 기착지나 마찬가지다.
다른 부위로 옮겨가는 암세포 무리는 림프절에서 숨 고르기를 한 뒤 림프관을 타고 2차 종양을 만들 목적지로 향한다.
암세포 무리는 전이에 유리한 미세환경을 조성하려고 미리 림프절에 엑소좀(exosomes)를 분비하기도 한다.
이 '세포 외 소낭'엔 암세포가 림프절 조직에 달라붙는 걸 돕는 NGFR(신경 성장인자 수용체)이 들어 있다.
그런데 종양의 림프관 형성을 원천 차단하는 치료법은 지금까지 결과가 좋지 않았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후귀스 교수는 "종양에서 빠져나온 수지상세포가 킬러 T세포를 활성화할 때도 림프관을 이용한다"라면서 "림프관 메커니즘을 완전히 봉쇄하기 어려운 만큼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을 상세히 이해하기 위해 면역 항암치료에 실제로 쓰이는 킬러 T세포를 흑색종에 걸린 생쥐 모델에 시험했다.
이 T세포는 환자에게 투여하면 곧바로 종양 세포를 제거할 수 있게 미리 식별 능력 등을 활성화한 것이다.
킬러 T세포는 종양 세포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림프관 내벽의 상피세포까지 공격했다. 킬러 T세포의 림프관 공격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림프관 상피세포는 킬러 T세포가 파괴한 암세포로부터 방출된 종양 항원을 포착해 킬러 T세포의 공격 표적이 됐다.
킬러 T세포는 적(공격 대상)을 식별하는 분자 표지로 이 종양 항원을 이용한다.
다시 말해 킬러 T세포의 암세포 파괴가 림프관까지 공격 범위가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종양 관련 림프계를 교란하는 이 메커니즘은 림프관을 완전히 막지 않고도 전이 위험을 대폭 낮췄다.
게다가 이 메커니즘은 종양 미세환경에만 나타나 전신 부작용이 따를 위험이 전혀 없었다.
림프관을 통해 종양에 드나드는 수지상세포의 기능을 방해하지 않는 방법도 몇 가지 제시됐다.
면역력이 온전히 형성된 뒤에 치료를 시작하거나 림프관 생성을 일부 제한해도 그 기능은 손상되지 않게 치료제 프로토콜(사용 계획)을 짤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환자의 몸 안에서 곧바로 공격을 개시하게 킬러 T세포를 미리 활성화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건 분명하다.
사실 면역 항암제에 반응하는 환자는 20%에 그친다.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기존의 암 치료법으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유력한 대안이 되는 건 사실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상당히 유망하긴 하나 면역 항암치료가 기적 같은 해법은 될 수 없다"라면서 "이 치료법에서 작동하는 생물학적 과정을 아주 미세한 것까지 알아내려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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