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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뒤 역사] 미국 헌법에 새겨진 총기 소지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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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뒤 역사] 미국 헌법에 새겨진 총기 소지의 권리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거치며 민중의 무장을 불가침의 권리로 인식
수정헌법 2조 "민병대는 州 안보에 필수…인민의 무기소지권 침해 못해"
헌법 수정은 사실상 불가능…헌법 해석을 통한 규제강화도 쉽지 않아

[※편집자 주 : '뉴스 뒤 역사'는 주요 국제뉴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건, 장소, 인물, 예술작품 등을 찾아 소개하는 부정기 연재물입니다.]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외부에서 미국을 바라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총기 문제다. 불과 몇십 분 만에 수십 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는 대형 총기 살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 전역에서 분노와 애도의 물결이 일고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늘 그때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많은 국가처럼 사냥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민간인 총기 소지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미국은 왜 못하는 것일까.
미국에서 총기 규제를 강화하기는 매우 어렵고 더더구나 총기 소지를 아예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헌법에 총기, 정확히 말해 무기를 소유할 권리가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바로 1791년 12월 비준된 수정헌법 제2조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소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더라도 미국 헌법에 명시된 총기 소지권이 주의 자유,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한 민병대의 무장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명목상 남아 있는 미국의 민병대(Militia)는 식민지 시절부터 지역 치안을 유지하고 외부 침략에 대처하기 위해 주민들로 구성한 조직이다. 민병대와 대비되는 상비군은 현대에 이르러 모든 국가에서 국방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지만 초창기의 미국은 물론 그 뿌리라고 할 영국에서도 상비군은 우려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영국 식민당국과 아메리카에 파견된 영국 상비군은 본격화하는 식민지의 독립 움직임을 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식민지인들에게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1774년 4월 19일 영국군이 보스턴 민병대의 무장을 해제하려는 과정에서 독립전쟁의 첫 총성이 울렸다. 식민지 대표로 구성된 대륙회의 주도로 미국에서도 정규군이 편성됐지만 민병대는 이들과 함께, 또는 독자적으로 영국군과 싸웠으며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앞서 영국에서는 의회의 승인 없이 상비군을 모집하고 신교도를 탄압하던 제임스 2세를 의회가 몰아내고 새 왕조를 옹립했다. 이 사건은 피를 흘리지 않은 정권 교체라고 해서 '명예혁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으나 의회는 절대 군주의 전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관습적으로 인정되던 무장의 권리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리하여 명예혁명의 결과물인 1689년 권리장전에 "신교도들은 자위를 위해 법이 허용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조건에 적합한 무기를 소유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내부적인 논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 헌법 제정을 주도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새로 성립된 연방정부가 평화 시 상비군을 두게 되면 주의 독립을 위협하고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할 위험이 있다고 봤다. 이들은 논의 끝에 주 민병대가 무장할 권리를 헌법에 보장하는 것이 연방정부가 폭군이 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렇게 헌법에 반영된 무기 소지권이 미국판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10개 수정조항 가운데 두 번째로 올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1789년 발효된 미국 헌법에는 국민의 권리에 대한 조항이 없었다. 기본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따로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제임스 매디슨의 발의로 권리장전이 초대 의회에 상정됐고 최종적으로 10개 조항이 비준 요건을 충족해 헌법의 일부가 됐다.



미국 권리장전에는 종교, 언론·출판, 집회의 자유(수정헌법 1조), 부당한 수색·압수·체포를 당하지 않을 권리(4조),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서는 생명, 자유, 재산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를 비롯한 민 형사재판 상 제반 권리(5~8조) 등 대개의 국가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자유와 권리들이 규정돼 있다. 무기 소지권이 권리장전의 두 번째 항목에 오른 것은 미국 헌법이 이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본권은 다른 헌법상 권리와 상충할 경우 일정한 제약을 가할 수 있으나 본질적인 내용은 결코 침해할 수 없다. 수정헌법 2조를 폐기하지 않는 한 미국 정부가 채택할 수 있는 총기 규제 정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는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규정투성이의 대통령 선거제도가 200년 이상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데서 보듯 미국 헌법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헌법학자가 조금이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관해서는 헌법 개정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대의 변화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해석함으로써 총기 소지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가능할까.



수정헌법 2조의 '민병대'에 관한 대법원의 해석은 그 역시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대 무기의 발전상과 군대의 전문성을 고려할 때 겨우 소총 정도로 무장한 민병대가 정부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지킨다는 논리가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정도를 지나 우스꽝스러워지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미국 국내에서 제기된 지는 이미 오래다.
설사 민병대의 무장이 압제를 막는 유효한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민병대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정헌법 2조의 취지에 부합하느냐는 물음에는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문제가 쟁점이 된 소송에서 미국 대법원은 무기 소지권이 반드시 민병대 대원들에 한정된 권리라고 볼 것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게 부여된 개인적 권리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렇게 헌법상 제약이나 역사적인 맥락 때문에 총기 소유를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총을 가져서는 안 될 사람에게는 좀 더 엄격한 제한을 두고 총기 거래를 더욱 투명하게 함으로써 총기로 인한 비극을 줄일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은 남는다. 그러나 총기 소지권 옹호론자들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총을 나쁘게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라면서 총기 사고를 막는 방법은 '좋은 사람'에게 총을 쥐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외국인이 보기에는 이상하지만 이런 논리가 상당히 먹혀들기 때문에 수많은 인명사고에도 총기 규제 강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cwhy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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