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100일] 다시 짙게 그어진 동서 냉전 경계선
중립국 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 추진…주요국 국방비 증강 경쟁
러시아에 중국·이란 가세해 '반미 진영'도 결집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 안보 지형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 변수'가 됐다.
냉전 시대를 거쳐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지난 30여년간 지역적, 국소적 분쟁외엔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국제 안보질서는 이번 전쟁으로 변곡점을 맞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에서 울린 총성은 굳건했던 미국 '1강 체제'에 도전하는 러시아와, 이에 중국이 가세하면서 세계는 다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러시아·중국이 구심점이 된 '반미 진영'으로 나뉘는 신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 나토 막으려던 러시아…서방 단결 속 나토 확장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내세운 이유 중 하나는 나토의 동진이었다. 1997년 '나토·러시아 조약'으로 상호안보를 보장하기로 했지만 이후 나토가 약속을 어기고 구소련 국가를 받아들이며 동진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턱밑에서 일으킨 전쟁을 직접 목격한 서방은 그간 느슨했던 대오를 정돈해 세를 규합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동유럽 주둔 병력을 늘리면서 러시아에 맞섰다.
현재 동유럽에서 나토가 직접 지휘하는 병력은 우크라이나 전쟁 수개월 전보다 10배가량이 늘어난 4만명이다.
70여년간 군사적 중립국 지위를 고수했던 핀란드와 스웨덴은 군사 비동맹주의라는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러시아는 나토가 동진해 자국의 국경에 더 접근해 위협한다면서 전쟁을 일으켰으나 오히려 이들 두 중립국이 새로 동참한 서방의 군사 연합 나토가 러시아를 향해 한 발 더 전진하는 결과가 됐다.
러시아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나토의 동진이라며 핵 대응을 포함한 강경 대응을 예고해 동서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졌다.
◇주요국 국방비 속속 늘려…2차 대전 전범국 독일, 일본도 가세
러시아의 침공은 주요 국가의 국방비 증강의 명분과 계기가 됐다.
미국 정부는 2023년 회계연도(올해 10월부터 내년 9월말까지) 국방예산을 올해 7천820억 달러에서 8천억 달러(약 980조 원)로 늘렸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라는 오명 속에 국방력 증강에 소극적이던 독일은 매년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2%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월 말 독일 국방정책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은 전후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유럽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패전 후 유지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이 사실상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보고 있다.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은 지난달 4일 독일의 사례를 들며 "이번에 군사력이 행사되는 현실을 눈앞에서 직접 봤다. 국민의 생명과 삶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이런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독자적인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자민당은 4월26일 확정해 총리에게 제출한 안보제안에 "나토 여러 나라의 국방예산의 GDP 비율 목표(2% 이상)도 염두에 두고 5년내 국방 강화를 위해 필요한 예산 수준을 달성하는 것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일본 정부는 방위비가 GDP의 1% 이내라고 통상 간주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발판으로 아베 신조 등 강경파가 총리 재임 중 이루지 못한 헌법 9조 개정까지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도 올해 '불안정한 안보 상황'을 고려해 국방 예산을 2019년 이후 최대 증가폭인 7.1%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도 2024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목표를 의회가 지지했다.
◇ 서방의 대러시아 단일대오 이면에 내부 균열
서방의 대(對)러시아 전선은 견고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국이 처한 이해관계 상황에 따라 서방 내부에서 종종 표출되는 균열은 이 대오의 불안요소다.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폴란드와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장기적으로 동유럽 병력을 증강하고 영구 주둔까지 요구하지만 나머지 동유럽권 회원국의 강력한 지지는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터키는 국내 정치문제를 나토 전략과 결부시켜 확장에 발목을 잡았다.
터키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자국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을 두둔하고 자국에 대한 무기수출을 2019년 중단했다는 점을 들어 나토 가입을 반대한다.
나토에 신규 가입하려면 기존 30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하는데 이처럼 터키가 거부권을 손에 쥐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바람에 승인 과정이 난항이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의 핵심인 러시아산 천연가스, 원유의 수입 금지 역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완전 금수 대신 부분 금수에 그쳤다.
러시아가 여전히 나토의 틈새를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서방 뭉치자 중국·러시아 '반미 진영'도 결속
전쟁을 고리로 뭉친 서방 동맹에 맞서 중국은 러시아의 가장 큰 우군이 됐다.
서방의 전방위 제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는 미국과 경쟁 관계인 중국과 한층 밀착하는 행보를 보였다.
국제사회 대부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크게 규탄했을 때도 중국은 비판을 삼가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 정부의 돈줄을 죄는 에너지 제재에도 중국은 러시아 원유를 싼값에 사들이며 크렘린궁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양국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순방 기간에 맞춰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동중국해에서 합동 정찰을 벌이는 위력 시위도 했다.
양국은 지난달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날 안보리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추가 제재를 표결했는데 러시아와 중국 모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북 제재안 부결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는 또 지난달 전통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에 곡물을 공급하고, 에너지 수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말 테헤란을 찾은 알렉산드로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이란은 몇 년째 제재 하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란의 경험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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