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낙태권 폐지 판결 초안에 '들썩'…찬반 둘로 쪼개져 갈등
대법원 앞 시위에 경비 강화…대법원장, 초안 유출 조사 지시
민주 "연방 차원 입법 추진" vs 공화 "대법, 압력에 굴복말라"
11월 중간선거 쟁점될 듯…여론조사선 낙태권 폐지 반대 우세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3일(현지시간) 미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낙태권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면서 찬반 진영 간 시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도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쟁점화하는 양상이다.
낙태권 이슈 자체만으로도 폭발력이 크지만, 대법원의 판결문이 초안이긴 하지만 전례 없는 유출된 일이 발생한 데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 조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일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작성해 대법원 내 회람한 다수 의견서 초안을 입수했다면서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뒤집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대법원의 판결 예상 시점보다 2개월가량 앞서 보도된 것이자, 1973년 판결로 확립된 낙태권 보장을 약 50년 만에 무효로 한다는 결정으로 큰 변화를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대법원, 초안유출 진상조사 착수…법원 주변 찬반 시위에 경비 강화
대법원은 사법권 독립 확보와 결정에 대한 신뢰를 위해 판결이 발표되기 전까지 철통 보안을 지켜왔다. 하지만 초안 형태긴 하지만 판결문이 사전에 유출된 것은 현대 사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일은 법원과 직원에 대한 모욕이자 신뢰를 손상하는 극악무도한 일"이라며 유출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다만 로버츠 대법원장은 유출된 초안이 진본임을 확인하면서도 초안이 대법관의 최종 입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CBS 방송은 연방수사국(FBI)을 포함해 전면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법원은 폴리티코 보도 이후 시위대가 몰려들자 자체 경찰은 물론 의회와 워싱턴DC 경찰의 협력을 받아 주변의 보안 조처를 추가했다.
시민단체들의 반응도 확연히 엇갈렸다.
낙태권을 옹호하는 미국가족계획연맹은 성명을 내고 판결문 초안의 내용은 끔찍하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이는 대법원이 낙태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끝내려고 준비한다는 최악의 우려를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 금지를 찬성해온 미국생명연합은 대법원의 초안을 환영한 뒤 "낙태 판례를 폐지하는 대법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대법원이 정치적 동기의 유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이든 "중간선거때 낙태권 옹호 뽑아야"…공화당 "유출 철저 조사 필요"
미국에서 낙태권 문제는 이를 옹호하는 민주당과 반대하는 공화당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정책 사안일 정도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첨예한 논쟁거리로 통한다.
이번 판결문 초안 보도는 정치권의 논란으로도 번졌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 표심에 영향을 미칠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민주당이 '친정'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법의 기본적 공평함과 안정성 측면에서 뒤집혀서는 안 된다"면서 유권자들이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을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권 분립이 엄격한 미국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대통령이 이런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성명에서 "미 전역의 주에서 공화당 입법권자들이 여성에 반해 법의 사용을 무기화한다"며 여성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울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 입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간 낙태권은 양당의 찬반이 극명해 입법 시도에 나서기보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유지하는 형태로 유지됐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 법에 대한 투표는 추상적 행동이 아니라 긴급하고 실질적인 행동"이라며 "여성의 선택권을 보호하기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공화당의 반대로 법안 통과가 어렵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공화당의 입법 저지 수단인 '필리버스터'가 있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려면 상원에서 60석이 필요하지만 민주당 의석은 친민주당 성향 무소속까지 포함해도 50석에 불과하다.
민주당에선 벌써 이 법에 한해 필리버스터 적용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민주당의 태도는 입법이 무산돼도 여론전에서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이 반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례로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달 24∼28일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4%는 기존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18%는 의견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 공화당은 대법원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입장 속에 상하원 원내대표 공히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등 유출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활동가들의 압력에 굴복하는 법원은 결코 사법적 정당성을 심화하지 못하고 이를 약화할 뿐"이라며 법원이 판결 초안 공개후 초래된 정치적 반발을 무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이 무법적인 행동은 가능한 최대한 범위로 조사해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 의원도 "2세기가 넘는 미국 역사에서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고 대법원에도 파괴적인 일"이라면서 일부 성난 좌파의 법원 직원이 책임이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 의원은 낙태 문제에 관한 입법은 연방이 나설 것이 아니라 주 정부와 주 의회에 맡겨놓을 부분이라고 옹호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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