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업체 사피온 류수정 대표 "글로벌시장 메이저사업자 될 것"
"내년 출시될 X330으로 강자 엔비디아에 도전장 낼 것"
"실리콘밸리 본사 거점으로 세계시장 공략·글로벌 인재 확보"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국내만이 아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빠르게 성장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메이저 사업자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지난해 말 미국에 본사를 설립한 SK 그룹의 AI 반도체 계열사 '사피온'(SAPEON)의 류수정 대표는 20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의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사피온은 SK텔레콤과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 3개 회사가 투자해 설립했다.
모기업이 한국 회사지만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사피온이 본사이고, 자회사인 사피온 코리아는 한국·아시아 지역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이런 지배구조는 사피온이 세계 시장을 고객으로 겨냥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을 고객사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사피온은 장기적으로 같은 그룹 내에 있는 세계적 메모리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를 이어 '제2의 SK하이닉스'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AI 반도체는 딥러닝 같은 AI 연산 처리에 특화된 시스템 반도체다.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론(inference)을 통해 인공지능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경망처리장치(NPU)라고도 불린다.
구글 검색 결과나 유튜브의 동영상 추천, 자동차의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등에 이미 AI 반도체가 쓰이고 있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의 1위 사업자인 엔비디아가 지배하고 있다. 당초 설계된 용도인 그래픽 처리를 넘어 인공지능 연산까지 수행할 수 있는 GPU의 범용성을 앞세워 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또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강자인 인텔은 자사의 특기인 CPU를 기반으로 한 AI 반도체를 내놓은 바 있지만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사피온은 GPU나 CPU 대신 AI 연산에 특화한 전용 하드웨어인 'ASIC'(에이직·주문형 반도체)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당초 다른 용도로 개발됐지만 AI 연산에 쓰이는 GPU나 CPU 대신 인공신경망 구축에 최적화해 설계된 칩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그 결과 사피온이 2020년 11월 선보인 이 회사의 첫 AI 반도체 'X220'은 출시 시점 기준으로 엔비디아의 경쟁 제품과 견줘 연산 속도는 1.5배 빠르면서 전력 사용량은 80%에 그치는 성능을 냈다.
X220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빅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센터 서버를 겨냥해 설계됐지만 자율주행이나, 스마트 팩토리, 영상정보 처리, 이미지 탐지·검사, 위치정보 파악 등 다양한 부문에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용도에 따라 하드웨어에 올라가는 솔루션을 맞춤형으로 최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 대표는 X220의 강점으로 빠른 응답 시간과 '추론 전용칩'이란 점을 들었다.
그는 "GPU는 데이터를 많이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해야 효율이 높기 때문에 처리하기 전 데이터가 모일 때까지 기다린다"며 "그러다 보니 AI 전용 칩보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빠른 응답 시간은 돌발상황에 실시간으로 대처해야 하는 자율주행 상황에도 유리하다.
류 대표는 또 "자율주행의 경우 오프라인으로 학습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가 (돌발상황 같은) 문제가 들어오면 답을 내는 추론이 중요하다"이라며 "우리 칩은 거기에 최적화돼 있어서 그런 문제를 풀 때 효율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피온이 가진 또 다른 경쟁력은 아마존이나 구글처럼 큰 계열사 내부 시장(captive market)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산업 분야처럼 반도체 업계도 검증되지 않은 신진 사업자의 새 제품에 쉽게 문을 열지 않는데, 사피온은 SK의 계열사들이 제품을 써보도록 해 성능에 대한 검증 자료를 확보한 뒤 글로벌 시장에 나갈 수 있다고 류 대표는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스마트 팩토리, T맵의 지도 및 교통 서비스 등에 적용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피온은 올해부터는 계열사 외부로도 고객사를 확대하고 있다. 일례로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AI 칩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북미에서는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인 싱클레어 그룹과 동영상의 해상도나 초당 프레임(화면) 수를 높이는 업스케일링(upscaling) 사업을 함께 하기로 하고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류 대표는 NHN 외에도 시범 사업을 같이 벌이는 곳이 많지만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만큼 현지의 전문 인력도 적극적으로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 대표는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만큼 아직 큰 진전이 있지는 않지만 연말까지 핵심 인력 20∼30명을 뽑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기술적으로 탄탄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리더급 인력 위주로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시스템 소프트웨어 쪽 인력을 1순위로 보고 있고, 그다음이 아키텍처 쪽"이라고 밝혔다.
류 대표는 "내년 상반기 다음 제품인 'X330' 칩이 나오면 현재 AI 반도체 시장의 강자인 엔비디아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성능이나 활용 사례까지 다 경쟁력이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 대표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출신으로, 디지털 신호를 빠르게 처리하도록 하는 집적회로인 DSP, 모바일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개발했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객원교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소프트웨어 자문위원 등도 지냈다.
그는 "AI를 통해 사람에 의존해야 했던 영역들이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며 "사피온을 통해 많은 사람이 손쉽게 고품질 AI 서비스의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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