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高 한국경제] ③ "전례 없는 복합 위기 온다"…비상등 켜는 기업들
"코로나19 팬데믹 파고보다 더 심각…비상대책 수립"
자금조달 비용 상승에 기업 회사채 발행 줄줄이 연기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기업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위기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재계의 한 임원이 전한 말이다. 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한꺼번에 덮치는 위기)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라 나오면서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중국 주요 도시 봉쇄 장기화, 원자잿값 인상, 금리 인상 등 동시다발적인 복합 악재로 한국 경제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高)'에 갇히면서 기업들의 경영환경도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올해 초 세운 경영계획 및 자금 조달, 투자계획을 재점검하는 등 비상 대응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 "코로나19 파고보다 더 심각…비상대책 수립"
재계 10위권 안에 드는 한 대기업의 고위 임원은 24일 "올해는 전반적인 경영 변수들이 안 좋아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작년과 재작년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서 현금유보액은 많은 편"이라며 "현금시재를 보면서 여러 효율성을 높일 방안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 8위 현대중공업그룹의 권오갑 회장도 지난 20일 긴급 사장단회의를 소집해 "앞으로의 위기는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위기와 차원이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사별로 '워스트 시나리오'까지 고려해 검토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삼성, SK, LG 등 주요 그룹들도 전반적인 경영환경과 계획 등을 재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은 현재 상황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주요 그룹의 임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활동 제약과 생산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예상 밖의 코로나19 특수로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기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원자잿값과 물류비 상승으로 원가 부담은 커졌지만, 제품가격에 모두 전가할 수 없어 수익성이 악화하는 것이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현대모비스[012330]는 올해 1분기에 3천86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기보다 21.1% 감소한 수치로, 원·부자재 가격과 운송비 상승 여파로 분석된다.
'물건을 팔면 팔수록 손해'라고 호소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대한상의가 최근 제조기업 304곳을 대상으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기업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6.8%는 올해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고, 31.2%는 제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발생해 영업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상무)은 "현시점에서 기업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원자재 수급난과 인플레이션"이라며 "투자와 고용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힘들어진 만큼 다수의 기업이 내부적으로 비상 대책 수립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수출 많이 해도 무역적자…7대 주력 업종도 안심 못 해"
기업들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와 내수시장 위축에 따라 타격을 받을까 우려한다.
현재 수출은 매달 역대 최고치 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유가 상승으로 원유 수입액이 늘면서 수출을 많이 해도 적자가 나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연간 누계 무역적자는 91억5천700만달러에 이른다.
재계 관계자는 "무역적자는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여기에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인 중국 봉쇄가 장기화하면 수출 자체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업종마다 업황의 차이는 있지만,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배터리·철강·디스플레이·조선·석유화학 등 이른바 7대 주력 업종 모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주력으로 삼는 D램 반도체 가격이 수요 위축 전망에 약세를 이어가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정상화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상하이 봉쇄가 장기화함에 따라 일부 부품 수급에 영향을 받으면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탄소중립 흐름에 따라 전기동력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금리와 물가가 오르고 원자재 공급도 원활하지 못해 부품업체를 포함한 자동차 업계는 투자는커녕 기존 대출금의 기한 연장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자금조달 비용 상승에 회사채 발행 줄줄이 연기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회사채 금리도 뛰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신용등급 AA-급 우량기업의 3년 만기 회사채 평균 금리는 지난 22일 기준 연 3.665%로 마감돼 작년 말 연 2.410%보다 약 1.25%포인트 상승했다.
금리가 오르면서 이달 중 자금 조달을 계획하던 SK머티리얼즈·한화·한화솔루션 등은 회사채 발행을 줄줄이 연기하거나 철회했다. 높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면 기업들의 중장기 자금 부담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현재 회사채 시장은 금리가 지속해서 오를 것이라는 전망 속에 수요예측 경쟁률이 하락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에서는 미매각이 발생하는 등 경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영증권[001720]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회사채 순 발행은 2조6천300억원으로, 작년 1분기 8조2천70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신영증권 이경록 연구원은 "최근 회사채 발행시장 분위기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자금경색 때보다 더 암울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발행금리가 너무 높아지다 보니 기업들이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거나 발행 시기를 연기하고 있다. 은행권을 통한 간접차입 조달도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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