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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입힌 예술'…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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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입힌 예술'…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호평
김윤철 작가, '나선' 주제로 '채도V' 등 6개 작품 전시
꼭 봐야 할 7개 국가관 선정…"기술·콘텐츠 모두 특별"


(베네치아=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처음 마주한 느낌은 미술관이라기보다 과학관에 더 가까웠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복잡한 금속 조형물이 여기저기 설치돼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 어느 시점에 와있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세계 최대·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 축제로 불리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설치된 한국관은 여러모로 독특하고 특별했다.
비엔날레 국가관이 언론 등에 사전 공개된 20일(현지시간) 'COREA'라는 국가명이 선명한 한국관 입구에 들어서자 육중한 물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꽈리를 튼 뱀이 꿈틀거리는 듯한 외형이었다.
물고기 비늘처럼 조형물을 덮은 몰드(셀)는 묘한 마찰음과 함께 아래위로 구부러지며 색과 패턴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이 작품은 설치작가 김윤철(52)이 제작한 '채도V'다. 꼬인 몸체를 일렬로 풀면 길이가 50m에 이른다고 한다.
주 전시관과 작은 문을 통해 연결된 한쪽 방에는 수많은 금속 막대가 복잡하게 얽힌 높이 4m의 또 다른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있다.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부푼 태양들'로 명명된 이 작품은 우주 입자가 지구 대기권 공기와 충돌할 때 생성되는 '뮤온 입자'를 검출하고 이를 신호 체계로 바꿔 채도V에 삽입된 382개의 몰드를 순차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 모든 움직임은 무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수학적 알고리즘에 따라 이뤄진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투명한 적층 폴리머로 이뤄진 채도V의 몰드는 그 어느 고화질 액정 화면보다 선명하게 색과 패턴의 변화를 잡아내 보여준다. 염료가 아닌 광학으로 표현되는 색이다.
빛이 물질을 통과할 때의 왜곡을 통해 만들어지는 색은 영롱하다 못해 몽환적인 느낌마저 든다. 김 작가는 이를 "우주적인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테크놀로지'가 중심이 된 전시관 한쪽 벽면에는 김 작가의 '아날로그적' 분필 스케치가 날것 그대로 표현돼 극명히 대조된다.
김 작가가 2주간 작품을 준비하며 직접 그렸다고 했다. 작품의 모태가 된 아이디어와 상상도 다수 숨어있다고 한다.
이영철(65) 예술감독과 김 작가가 '나선'(Gyre)을 주제로 잡아 함께 꾸민 올해 한국관의 키워드는 '물질'이다.
김 작가는 "나에게 메타포는 물질 그 자체다. 언어적 메타포라기보다 물질 스스로가 지금과 현재를 얘기하는 하나의 메타포"라고 설명했다.
쉽게 풀면 '물질이 객체가 아닌, 실재를 만드는 주체들'이라는 것이다. 김 작가는 그러면서 '인간과 사물의 조우·공존'이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짚었다.
김 작가가 주제로 삼은 나선은 아일랜드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착안한 것이다.
예이츠는 이 시에서 소용돌이의 격렬한 움직임 속에 과거의 문명이 새로운 문명으로 교체되는 현상을 노래했다.


주제에 걸맞게 한국관에 설치된 김 작가의 5개 작품은 모두 매듭 혹은 나선의 형태를 이룬다.
굳이 언급하자면 현재진행형인 팬데믹과 최근에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등도 하나의 '자이어 모션'이라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이번 한국관 전시의 기획 의도 혹은 메시지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지만 김 작가는 이를 온전히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놨다.
김 작가는 "정답이나 해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 정형화된 메시지를 찾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술"이라며 "바람이 있다면 관람객이 사물과 사건,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리얼리티의 가치를 마주했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치 작품들이 공간과 조화를 이뤄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듯한 한국관의 범상치 않은 조형미에 관람객의 반응도 뜨겁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미술관 디렉터 샤샤 나베르고일은 "기술적으로는 물론이고 콘텐츠도 매우 특별하다"며 "다른 어떤 국가관보다 흥미롭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난 미술 매체 아트뉴스페이퍼는 한국관을 꼭 봐야 할 7개 국가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올해 비엔날레에는 81개국이 전시에 참여했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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