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수도 키이우 지키는 복싱 챔피언 출신 시장 '주목'
동생과 세계 해비급 복싱 평정…정계 진출 후 유로 마이단 시위 상징으로 부각
키이우 지키며 방어에 성공…차기 대선 후보로 떠올라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러시아의 맹렬한 공격을 버텨낸 가운데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인 비탈리 클리치코 시장이 주목받으며 차기 대권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클리치코 시장은 연일 포격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키이우 시내 곳곳을 다니며 러시아의 민간인 공격을 고발하는 동영상을 찍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가 해방됐을 때도 바로 달려가 길거리에 널린 민간인 시체를 가리키며 러시아군의 집단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WP는 "코미디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지만 바리케이드가 쳐진 키이우에서는 클리치코가 훨씬 눈에 띄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클리치코는 1971년 키르기스스탄에서 소련 공군 조종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와 남동생 블라디미르 클리치코는 어렸을 때부터 복싱을 시작해 두각을 보였고 세계적인 권투 선수가 됐다.
두 사람 모두 복싱의 최고 인기 체급인 헤비급을 10년 넘게 양분하며 2000년대 최강의 복서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같은 형제간 대결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통산 전적은 형인 비탈리 클리치코가 45승(41KO) 2패, 블라디미르가 64승(53KO) 5패다.
두 형제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바탕으로 불혹을 넘길 때까지 헤비급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클리치코의 별명은 '철권(鐵拳) 박사'다. 2m가 넘는 장신에 접시만 한 큰 주먹을 갖고 있으면서 복싱을 하면서도 학업을 이어가 스포츠과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동생 블라디미르 역시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두 사람 모두 러시아어와 영어, 독일어에 유창하다.
클리치코는 2012년 국회의원이 됐고 2013년 복싱계에서 공식 은퇴했다. 그가 정치인으로 입지를 얻게 된 것은 2013년 유로 마이단 시위 때였다. 친 러시아 정책을 펼치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 맞서면서 유로 마이단 시위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를 동력으로 2014년 우크라이나 대선에 나서려 했지만 억만장자인 페트로 포로셴코를 야권 단일 후보로 지지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그해 5월 키이우 시장에 당선됐다.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키이우에도 맹공이 이어졌지만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키이우에 남아 도시를 사수했다.
그의 동생 블라디미르도 예비군에 가입했다.
형제는 몇 년간 살았던 독일로 날아가 인도적·군사적 지원을 요구하는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클리치코 시장은 키이우 방어에 대해 "러시아군은 돈을 위해 싸우지만, 우크라이나군은 가족과 여성과 아이들과 우리 가족의 미래와 조국의 미래를 위해 싸운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평소 말이 어눌하고 거친 면이 있다. 그의 지지자들조차 클리치코 시장이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불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의 실언은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널리 공유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복싱선수답게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익숙하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은 그가 다음 대선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안드리 샤빈스키는 "전쟁 전에는 그를 별로 좋지 않게 봤다"며 "하지만 클리치코는 키이우를 지켜냈고 그의 동생도 응원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한다"고 WP에 말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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