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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봉쇄] ① '식료품 랜덤박스' 기대 사는 2천500만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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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봉쇄] ① '식료품 랜덤박스' 기대 사는 2천500만 시민
'4일 봉쇄' 약속 믿었던 시민들 날벼락…초현실적 고요 속 민생 위기
'제로 코로나 전장'…매일 코로나 검사, 자고 나면 사라지는 이웃

[※편집자 주 = 인구 2천500만의 중국 '경제수도' 상하이시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시를 동서로 나눠 나흘씩 봉쇄하려 했으나 감염자 확산이 지속되면서 9일 현재까지 13일째 봉쇄가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의 격리된 삶과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초고강도 방역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등을 짚어 보는 기획 3편을 송고합니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8일 오후, 상하이 봉쇄 후 처음 기자의 집 문 앞에 구매한 '식품 꾸러미'가 도착했다.
감자 몇 알, 토마토 한 팩, 양배추 한 통, 닭 한 마리, 아스파라거스 한 단이 들어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온라인 대화방에서 모여 문을 연 식료품 가게를 수소문한 뒤 '주민 대표'가 협상에 나서 어렵게 성사시킨 '공동 구매'의 결과물이다.
특별 허가를 받아 문을 겨우 연 식료품 가게들은 일손 부족으로 개별 고객의 요구대로 상품을 팔 수가 없다. 그래서 가격은 정해져 있지만 무엇이 들었는지는 물건을 받아봐야 알 수 있는 '랜덤 박스' 식료품 꾸러미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인구 2천500만의 초거대 도시 상하이의 봉쇄가 9일로 13일째를 맞았다.
당초 4일로 끝날 거라는 당국의 말은 결과적으로 허언이 됐다. 상하이 주민들은 각자도생하며 '식품 랜덤박스'에 기대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봉쇄가 시작되고 나서 시 정부가 보내준 무료 식품 꾸러미를 한 번 받기는 했다.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지역별로 사정이 달라 이마저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이들도 많다.
기자가 사는 단지처럼 판매상과 연결이 돼 식료품을 산 곳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봉쇄로 주민 외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갖가지 문제로 식료품 등 생필품 구매가 어려운 곳이 많다.
식료품을 파는 곳을 찾아도 보통 최소 40∼50명이 동시에 참여해야 구매가 성사되기에 소규모 단지 주민들의 경우 협상력이 약해 공동구매 진행 자체가 어렵다.

수천 세대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문제가 생긴다. 관리 인력이 부족해 단지 정문 앞에 쌓인 물건을 모든 집 현관까지 가져다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대단지에 사는 시민 우 씨는 "우리 단지의 경우 공동구매를 진행하면 대표자가 직접 나가 물건을 가져가 배송을 해야 해 공동구매 진행이 어렵다"고 전했다.
우 씨는 "먹을 게 떨어져 하루에 반찬 하나 먹고 살고 있다. 어쩌다 시에서 가져다 주면 그것 먹고 버티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서 가장 소득이 높은 상하이 시민들이 '식량난'에 처한 것은 주민 외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온라인을 통한 식료품 유통 체계가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원래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의 대도시는 온·오프라인 연계사업이 가장 발전한 지역에 속한다.
평소 알리바바 계열 온·오프라인 슈퍼마켓인 허마셴성, 징둥과 메이퇀이 각각 운영하는 근거리 온라인 슈퍼인 징둥슈퍼와 메이퇀마이차이,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근거리 식료품 배송 서비스 딩둥마이차이 등의 모바일 앱으로 식품을 주문하면 빠르면 30분 안에 배송원이 물건을 가져다준다.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주문해 집 앞까지 배송받는 방식이 보편화돼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봉쇄로 인해 온라인 식료품 공급 업체 직원과 배송원들이 대다수 격리되면서 이 같은 식료품공급 흐름이 마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하이 봉쇄는 헛소문입니다. 공급 물자는 충분합니다. 식품 사재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봉쇄 시작 직전까지 시 정부가 시민들에게 당부했던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봉쇄가 나흘 동안 짧게 이뤄질 것이라는 약속도 깨졌다.
당국의 말을 믿은 사람들만 날벼락을 맞았다. 우왕좌왕식 봉쇄에 당국에 대한 신뢰에 크게 금이 갔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인구의 절반인 2천500만명이 사는 상하이는 오랜 봉쇄로 초현실적 공간으로 변했다. 차량과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거리에서는 도시의 소음이 완전히 걷혔다. 마치 종일 새벽인 것처럼 새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이런 모습은 전례 없는 민생의 위기를 상징한다.
사업자에서 음식점 종업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 건설 일용직 노동자, 공유차량 기사 등 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중국 소셜 미디어에서는 최근 상하이의 한 배달원이 아파트 단지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가 일을 하려다가 공안에 붙잡힌 모습이 담긴 영상이 퍼져 사람들의 동정을 자아냈다.
공안이 "왜 담을 넘어 나가려고 했느냐"고 다그치자 이 사람은 "배달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해요. 방세를 낼 돈도 없어요"라고 호소하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상하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이번 오미크론 감염 파도가 닥친 3월 1일 이후 8일까지 상하이의 누적 감염자는 15만명을 넘어 이미 2020년 우한 사태 규모를 훨씬 넘어섰다.
오미크론 변이 앞에서 중국이 자랑해온 '코로나 만리장성'이 속절없이 뚫렸지만 중국은 어떻게든 '감염자 0명'으로 돌아가겠다면서 감염자는 물론 1차 밀접 접촉자, 2차 밀접 접촉자까지 모조리 대형 컨벤션 센터 등을 개조한 격리시설로 데려가고 있다.
감염자 15만명에 밀접 접촉자들까지 더해 현재 상하이에서 격리시설로 옮겨진 사람은 최소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많은 주민이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도 코로나19에 감염돼 환경이 열악한 격리시설로 가는 것을 더욱 두려워한다. 최근까지 당국은 어린이 환자와 부모를 분리 수용하는 정책을 고수해 자녀가 있는 가정에 코로나 감염은 재앙 그 자체였다.
감염자 발견과 격리를 위한 검사는 거의 매일 계속되고 있다. PCR(유전자증폭) 검사 인력이 부족한 날에는 각 가정에 신속항원검사 키트가 보내진다.
자고 나면 이웃이 사라지고, 남은 주민들 사이에는 불안감이 맴돈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 동의 옆 라인에 사는 노부부도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인 뒤 어디론가 떠났다.
이날 아침에도 현관문 앞에 놓인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가져다가 검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관리사무소에 '보고'를 했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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