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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In] 중동서 비틀거리는 바이든 외교…커지는 푸틴·시진핑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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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In] 중동서 비틀거리는 바이든 외교…커지는 푸틴·시진핑 그림자
사우디 실세 빈 살만, 바이든 통화요청 거절하고 푸틴과 통화
원유 위안화 결제까지 검토…"바이든에 받은 모욕 용서 안 해"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야욕을 강력한 국제제재로 꺾으려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중동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의 우방이던 중동 산유국들이 효과적인 러시아 제재를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협조 요청을 외면하고 있어서다.
취임 초부터 인권을 내세우며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홀대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뒤늦게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이미 감정의 골이 깊게 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실질적 리더인 사우디는 원유의 위안화 결제까지 검토하고 나서면서 반세기 동안 지속된 달러 패권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바이든 전화 안 받는 사우디 실권자…"美, 중동외교 전념해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2일 만인 이달 8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 금지 방침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돈줄을 죌 수 있는 강력한 카드지만, 추가 유가 상승을 초래해 이미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미국과 세계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한 조처였다.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인플레는 바이든의 정치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여서 미국 정부는 이 발표를 전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많은 전문가는 바이든이 인플레를 잡지 못하면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원유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OPEC에 추가 증산을 요청했고, 오랫동안 적대적인 관계이던 베네수엘라에도 정부 대표단을 보내 금수 조치 해제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OPEC는 미국의 증산 요청을 거부했다. 전 세계에서 원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베네수엘라 역시 증산 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면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2008년 무렵 하루 원유 생산량이 320만 배럴에 달했으나 부실 경영과 투자 부족, 부패, 미국의 제재 등이 맞물리며 2020년 50만 배럴대로까지 생산량이 추락했다.
베네수엘라 석유 전문가 카를로스 멘도사 포테야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 측과의 회동 뒤 말한 하루 평균 200만 배럴 생산에 도달하기 위해선 "4∼5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으로서 가장 뼈아픈 것은 OPEC의 비협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한 뒤 OPEC를 주도하는 사우디의 실세 빈 살만 왕세자를 대놓고 무시해왔다. 2018년 발생한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가 빈 살만이라며 그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국제무대에서 그를 '투명인간' 취급해온 것이다.
미국은 또 이란의 배후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과 싸우는 사우디에 대한 지원을 끊으면서 후티 반군에 대한 테러단체 지정도 해제했다. 사우디와 약속했던 무기 판매도 보류했다.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달 초 국제유가 안정대책 협조를 당부하기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미국이 극력 반대해온 원유 위안화 결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974년부터 미국이 사우디를 군사 지원하는 대가로 오직 달러화로만 원유를 결제하도록 한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를 깨겠다는 것이었다.
달러화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를 뒷받침하는 이 체제가 퇴색되면 '달러 패권'이 흔들릴 수 있다.
워싱턴 소재 국제안보분석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 갤 루프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원유시장, 더 나아가 글로벌 원자재 시장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보험정책"이라며 "그 벽돌을 빼면 벽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우디가 실제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미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사우디의 위안화 허용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다"며 사우디가 과거에도 미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꺼냈던 단골 소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들의 '탈미국'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WSJ은 21일 "사우디도, UAE도 바이든의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다시 중동지역 외교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다급해진 미국, 관계개선 나섰지만…중동서 커지는 중·러 그림자
사우디가 위안화 원유 결제를 검토하는 것은 그만큼 원유 수출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사우디산 원유의 최대 고객이었던 미국이 지금은 수출 시장에서 사우디와 경쟁하는 국가가 된 반면 중국은 사우디 원유 수출 물량의 4분의 1이 넘는 하루 평균 176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최대 수요처로 부상했다.
이 물량이 위안화로 거래될 경우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전 세계 원유 거래의 80%를 차지해온 '페트로 달러'의 지위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위안화 결제뿐 아니라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통해 일명 '페트로 위안'으로 불리는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거래 허용도 고려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사우디 당국자는 WSJ에 "역학관계가 극적으로 변했다"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변했고, 중국은 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사우디에 다양하고 수익성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사우디를 홀대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서운함을 느낀 사우디 정부가 미국의 공백을 메울 새 안보·경제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WSJ은 "사우디가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수도 리야드를 공식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이슬람 금식기간 라마단(4월)이 끝난 뒤인 5월 중 성사가 유력하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이를 수락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해외를 방문하는 셈이 된다.
한 사우디 관리는 WSJ에 "빈 살만 왕세자와 시 주석은 막역한 친구이며 단지 그들이 우리의 원유를 사주고, 우리는 그들의 무기를 사주는 그런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친밀한 관계다.
푸틴은 자말 카슈끄지 살해 두 달 뒤인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몰려 홀대받던 빈 살만에게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정을 보여줬다.
푸틴은 이듬해 10월에는 12년 만에 사우디를 방문해 OPEC와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를 고리로 양국 간 협력 관계를 강화하며 빈 살만과의 우정을 돈독히 했다.
빈 살만이 이달 초 바이든의 통화 요청은 거절했으면서도 직후 푸틴과 통화해 원유 증산 대책을 논의한 것도 이런 신뢰 관계가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안보 전문가인 알렉세이 무라비에프 호주 커틴대 교수는 호주 공영 ABC 방송에 "러시아는 지난 5∼6년 동안 중동에서 사우디, 카타르, UAE 등과 강력한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며 "러시아가 수년간 공들여온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진 중동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다급해진 쪽은 미국이다.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급등세와 인플레를 잡으려면 OPEC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9월 사우디 공군기지에서 빼냈던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최근 재배치한 것도 악화한 사우디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바이든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느끼는 빈 살만 왕세자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2일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사우디 양측은 바이든과 빈 살만의 첫번째 통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반목의 골이 워낙 깊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왕세자는 자신이 느낀 모욕을 용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전했다.
passi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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