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5살 아동 "죽기 싫어"…폭격 극장 생존자가 전한 참상
BBC "러시아군, 남부 마리우폴 극장 정밀 타격…선별된 목표물일 가능성 높아"
"피 흘린 채 쓰러진 사람들·잔해에 깔린 아이 찾아 헤매는 어머니…아비규환"
(서울=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 수백 명이 대피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극장 건물이 러시아군 폭격으로 붕괴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생존자들이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전했다.
22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오전 내내 러시아 군용기들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상공을 선회했던 지난 16일 마리아 로디오노바(27)는 해안가 인근에 있는 극장 건물 뒤편 강당 무대 옆에서 애완견 2마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리아는 마리우폴을 향한 러시아군 공세가 이어지자 열흘 전 평소 살았던 아파트를 떠나 이곳 극장에서 생활해왔다.
이날 오전 10시께 마리아는 애완견들에게 줄 따뜻한 물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던 극장 건물 입구로 향했고, 그 순간 러시아군이 투하한 폭탄이 건물 위로 떨어졌다.
엄청난 폭발음에 마리아는 귀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뒤따르던 한 남성이 폭발 충격으로부터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황급히 벽 쪽으로 밀쳤다. 또 자신의 몸으로 마리아를 감쌌다.
당시 극장 안팎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폭발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진 한 남성의 얼굴은 유리 파편으로 뒤덮여 있고 머리에 상처를 입은 또 다른 여성도 목격됐다.
혼란 속에서도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마리아는 극장 안에 있는 구급상자를 가져오려고 했으나 건물 대부분은 이미 무너져 내린 상황이었다.
마리아는 "2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충격을 받은 상태로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극장 건물 안에 있었던 한 20대 남성은 러시아군 폭격이 시작되자 친구들과 함께 지하실로 황급히 대피했다.
10분 뒤 지하실에서 빠져나온 그 역시 참혹한 상황을 맞이했다.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고, 한 어머니는 잔해에 깔린 아이들을 찾고 있었다.
"죽기 싫다"고 울부짖는 5살짜리 어린아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미국 상업위성 업체 맥사(Maxar)가 러시아군 공습 전인 지난 14일 촬영한 사진에는 극장 건물 앞과 뒤쪽 2곳에 러시아어로 '어린이들'(дети)을 뜻하는 단어가 흰색으로 크게 적혀 있다.
이는 러시아군의 공습을 막기 위해 극장 건물에 어린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BBC는 전문가 의견을 인용해 이날 러시아군은 KAB-500L 레이저 유도 폭탄이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무기 1발을 발사해 극장 건물 중앙을 타격했으며, 정확도를 고려할 때 이 건물이 선별된 목표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또 이번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아직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시 극장 안에 최대 1천 명이 대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공습 후 이곳에서 130여 명을 구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4일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을 점령하기 위해 집중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곳을 포위하고 투항을 요구했으나, 우크라이나는 항복을 거부했다.
이처럼 교전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이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으며 상당수 주민은 여전히 식량, 의약품, 전력, 수돗물이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극장 건물 공습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에서의 민간인 공격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끔찍한 참사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마리아는 이후 며칠을 걸어서 마리우폴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마리우폴에 남겨진 할머니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착잡하다.
아파트에 함께 살았던 그녀의 할머니는 마리아가 극장으로 함께 대피하자고 했을 때 "나는 내 집에서 죽을 것이다"며 거절했다.
이후 지금까지 마리아는 할머니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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