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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를 가다] 영화 모가디슈처럼…한국대사관 키이우 탈출기
눈앞서 기관총 소리…전속력 질주 탱크에 깔릴 뻔하기도
김형태 대사는 마지막에 만삭 산모와 함께 출발
태극기 덕에 검문소 신속통과…현지인 피란 차량 20여대 합류하기도



(체르니우치[우크라이나]=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말도 마세요. 우리 직원들 전부 영화 한 편씩 다 찍었죠."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체르니우치의 임시 대사관에서 만난 김형태 주우크라이나 대사는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빠져나오던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김 대사가 전한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의 키이우 탈출기는 영화 '모가디슈'를 떠올리게 했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됐던 한국 대사관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소말리아를 빠져나오는 과정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김 대사를 비롯한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들의 탈출기는 31년 전 선배들의 경험 못지않게 긴박했다.
개전 사흘째인 지난달 26일 키이우에서 교민을 이끌고 체르니우치로 향하던 성기주 영사는 출발하자마자 위기에 닥쳤다.
차량 행렬의 바로 앞 사거리에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사이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개전 26일째인 이날까지 러시아군은 공식적으로 키이우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는 개전 당일부터 수도에 잠입해 있던 러시아 공작원과 우크라이나군 간 시가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산발적으로 총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앞에서 기관총 소리가 '타타당'하고 계속 나더라고요. '잘못하면 죽겠구나' 싶어서 바로 방향을 틀었죠."
성 영사에 앞서 하루 일찍 교민 20여 명과 함께 키이우를 떠난 김현우 전문관은 체르니우치에 도착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세 번 포성을 들었다.
우크라이나군 탱크 5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바람에 교민 차량이 탱크에 깔릴 뻔한 적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루마니아 국경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3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평소라면 8시간이면 갈 거리였다.



김 대사는 눈이 내리던 지난 2일 마지막으로 키이우의 대사관을 떠났다. 김 대사의 일행에는 만삭의 산모도 있었다.
임신 8개월의 산모를 뒷자리에 태운 채 운전대를 잡은 대사관 직원은 "산모와 태아가 걱정돼 조마조마했다"며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머나먼 타향에서 피란길에 오른 대사관 직원과 교민 일행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태극기였다고 했다.
차량 앞뒤 유리창에 부착한 태극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다른 차량은 통과하는 데 2시간 이상 걸리던 검문소를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통과하는가 하면, 현지 경찰이 대사관 직원과 교민 차량을 에스코트해주기도 했다.
이를 본 우크라이나 현지인 피란 차량 20여 대가 한국 차량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영화 속 소말리아 대사관 직원들은 총알을 막기 위해 두꺼운 책으로 차를 감싼 채 대사관을 떠났는데, 현실에서는 태극기가 우리 일행을 지켜준 셈이다.
김 대사는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며 "우크라이나만큼이나 힘든 역사를 겪은 한국이 어려움을 딛고 번영을 이룩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한국을 배워야 할 나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개전 직후부터 교민의 대피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철저한 사전 대비가 큰 몫을 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여행경보가 3단계로 격상된 1월 25일 기준 우크라이나에 머무르던 한국인은 총 565명으로 집계됐다.
주우크라이나 대사관은 매일 교민 단체대화방을 이용하거나 직접 통화를 시도해 출국을 권유했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 전역에 4단계 여행금지 조처가 내려진 2월13일까지 약 250명이 우크라이나를 출국했다.
2월 14일부터 개전 당일인 2월 24일 사이에는 180여 명에 달하는 선교사를 포함해 210명가량이 출국해 우크라이나 내 한국인의 수가 100명 이하로 줄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잔류한 교민은 총 25명으로, 대부분 현지인과 결혼하거나 생계 등의 이유로 출국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김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교민과는 하루에 2번 이상 연락하고 있다"며 "전쟁 발발 전 선교사협회 등 교민 단체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며 출국해준 덕분에 남은 교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힘을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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