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전쟁 뒤 밀가격 21%↑…눈앞에 닥친 식량위기
비료 공급도 차질…식량 공급 부족 부추기는 악순환
곡물가격 급등으로 빈곤국 기아·정치불안 등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유럽의 '빵 바구니'라고 불릴 만큼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으로 전세계에 식량공급 부족 문제가 닥쳤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식량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여러 대륙에서 부작용이 파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도에 따르면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산 밀과 옥수수, 보리 등 곡물이 전쟁 때문에 수출되지 못하고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비료 수출도 막히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식량과 비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지난달 전쟁이 시작된 이래 밀 가격은 21%, 보리는 33% 올랐고 일부 비료는 40%나 가격이 상승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세계 곡물시장 점유율은 밀이 27%, 보리가 23%에 달한다. 해바라기유는 53%, 옥수수는 14%로 비중이 크다.
가뜩이나 팬데믹 여파로 해운 물류 마비, 에너지 가격 상승, 일부 지역의 가뭄과 홍수, 산불 등으로 인해 곡물 가격은 불안정한 터였다.
여기에 이번 전쟁으로 밀 등 식량과 비료 공급이 부족해지고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당장 극빈국에서 기아가 발생할 위험성이 커졌다. 일부 저소득국에선 민생고가 커져 정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프리카나 중동 등지의 취약 국가들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과 연료 가격 급등으로 기초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또다시 식량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 농부들은 전쟁 때문에 중요한 파종 시간을 놓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11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에 연료 지원을 요청하면서 "전쟁으로 연료가 군수용으로 전환되면서 농업에서 쓸 재고가 바닥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경작지의 30%가 전쟁터로 변했고 수백만명의 국민이 피란해 농사를 지을 인력도 태부족이다.
최대 곡물 생산·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은 심각한 홍수로 인해 밀 수확량이 수십년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곡물 수입을 늘리려 한다. 중국에선 작년 홍수로 밀의 3분의 1가량이 재배가 늦춰진 상태다.
중국이 세계 곡물시장에서 물량을 흡수하면 여파는 상당히 크다.
중국이 수입하는 밀, 보리, 옥수수, 해바라기유, 유채기름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의 비중은 23%에 달한다.
비료 공급도 차질이 불가피한데 이는 다시 식량 공급 부족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러시아는 전 세계 비료 공급량의 15%를 책임져 온 세계 최대 비료 수출국이지만 제재 때문에 수출이 막혔다. 러시아와 함께 제재를 받는 벨라루스도 만만찮은 비료 수출국이다.
유럽의 비료 공장은 가뜩이나 비싸진 전력 요금 때문에 생산량을 대폭 줄여 왔고 주요 비료회사는 제품값을 최근 1년간 두세 배씩 올렸다.
이에 남미 브라질부터 미국 텍사스까지 농부들은 치솟은 비료 가격을 감당 못 해 경작지를 줄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경제학계와 구호기구 등은 곡물 가격 상승으로 극빈국의 기아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엔은 이달 초 "전쟁이 세계 식량시장에 미치는 여파만으로 760만명에서 1천310만명이 추가로 기아로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상황은 말그대로 재앙 위에 또다른 재앙이 더해진 것"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식량 문제가 악화하면서 전쟁을 보는 세계인의 시각을 바꿀 수도 있다고 NYT는 전망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일정부분 식량과 비료 유통을 막기는 탓에 식량 위기가 커지면 이 제재에 대한 비판 여론과 불만이 고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와 몽골, 카자흐스탄 등은 밀을 전량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 왔다. 이들 국가는 대체 수입지를 찾아야 하고 터키와 이집트, 방글라데시, 이란 등 기존의 러시아·우크라이나 곡물 주요 수입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에 대한 밀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나라는 소말리아, 베냉, 이집트, 수단 등 아프리카의 빈국이 대부분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저소득국에선 1970년대 이후 식량가격이 올라가 민생고가 악화하면 민중봉기로 이어졌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의 빈국은 이미 팬데믹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타격을 받은 상태여서 식량 가격 상승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다.
스코티아뱅크의 농업 분석가 벤 이삭슨은 "이들 국가에서 국민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촉발한 것은 다름 아닌 식량 부족과 식품 가격 인플레이션이었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내전 중인 예멘과 시리아, 남수단, 에티오피아는 이미 심각한 기근을 겪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쟁의 여파로 식료품 가격이 뛰면서 구호 식량 전달이 어려워지고 있다.
아프간의 한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누르딘 아흐마디는 "이번달 러시아에서 식용유를 구하는 데 닷새나 걸렸다"라며 "미국은 러시아와 소속 은행을 제재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전 세계를 제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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