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시아 국가부도 직면…국채 가격 액면가 10% 밑으로
상습 부도 아르헨티나 기록 근접…"글로벌 채권시장 복귀 오래 걸릴 듯"
피치 "달러화 국채 이자 루블화 지급은 디폴트"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러시아가 서방의 초강력 제재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가운데 러시아 국채 가격이 액면가의 10% 아래로 하락, '상습 부도 국가'인 아르헨티나의 과거 기록에 근접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채권시장의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가 세계 금융 시스템에 복귀하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는 관측을 보여준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러시아가 채무 불이행(디폴트)으로 가는 첫 번째 분수령은 16일이다. 러시아는 2건의 달러화 표시 국채에 대해 1억1천700만달러(약 1천450억원)의 이자를 이날까지 지급해야 한다. 이들 국채는 30일간의 유예기간이 있다.
러시아는 달러화 국채 이자를 루블화로 상환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루블화로 지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14일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러시아가 이 달러화 국채 2건의 이자를 루블화로 지급할 경우 유예기간 30일이 지나면 채무 불이행에 해당한다고 이날 성명에서 밝혔다.
피치는 이어 루블화 지급 후 유예기간이 지나면 이 국채 2건의 신용등급을 디폴트를 나타내는 'D'로 강등하고 러시아의 장기신용등급을 '제한적 디폴트'로 낮출 것이라고 예고했다.
러시아 국채 가격은 지난주에 달러당 10센트 밑으로 내려가 5년 전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던 베네수엘라 수준이 됐으며, 여러 차례 디폴트를 선언했던 아르헨티나 국채의 최저 수준에 가까워졌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소송전 끝에 15년이 지나서야 글로벌 채권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어드밴티지데이터에 따르면 달러 표시 러시아 국채의 가격은 달러당 8센트지만 펀드매니저들은 5센트에서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국채는 2009년 달러당 6센트까지 떨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러시아 국채는 투자등급이었으며 달러당 100센트 안팎에서 거래됐다.
국가부도를 앞두고 헐값의 부실 채권에 투자하는 이른바 '벌처펀드'도 러시아 국채는 꺼리고 있다.
벌처펀드는 디폴트에 빠졌던 국가가 다시 국제 채권시장에 들어오려 할 때 협상이나 소송으로 채권을 회수하지만, 러시아를 상대로는 이런 전략을 실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최초의 외화 디폴트에 직면했다. 러시아는 1998년 금융위기 당시 루블화 국채의 디폴트를 맞았고, 달러화 표시 국채에 대해 모라토리엄(채무 지급 유예)을 선언했다. 1998년 당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았다.
러시아가 디폴트에 빠지면 채권자들이 어떤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러시아는 국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도 몇 년은 버틸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애널리스트들은 관측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 국채의 80%는 자국 내 투자자들이 보유했다. 러시아가 석유 수출로 현금을 쌓으면 투자자들에게는 협상 지렛대가 별로 없다.
2016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국제 소송을 이끌었던 제이 뉴먼 전 엘리엇매니지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채권 보유자들이 러시아의 해외 자산을 소송으로 압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송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러시아 같은 나라를 상대로 법원 결정을 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의 러시아 채권 보유자들이 러시아와 채무조정 협상을 하려고 해도 미국이나 유럽이 이를 막을 것이라고 카를로스 드소자 본토벨자산운용 펀드매니저는 말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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