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수출입기업·현지 유학생 불똥…"제재 비대상 은행 활용"
시중은행, 루블화 환전 사실상 중단…러시아 관련 거래 회피
아직 송금 가능하지만 향후 상황 불확실…정부, 애로 해소 방안 모색
(세종=연합뉴스) 하채림 김다혜 기자 =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융제재로 러시아와 교역하는 우리 수출입기업과 유학생 등 현지 교민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과 한국 정부가 거래 중단을 결정했거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통신망에서 배제되는 러시아 은행은 8개 수준이어서 러시아로 돈을 보내고 받을 방법이 아예 막힌 상황은 아니다.
제재 대상이 아닌 러시아 내 유럽계 은행이나 우리나라 은행의 현지 법인 등을 통해 거래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금융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시중 은행들이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 환전을 사실상 중단했고, 그 밖의 러시아 관련 거래도 기피하고 있어 상대 은행이 제재 대상인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거래가 위축되고 있다.
◇ 대러 결제 애로 원인 복합적…루블화 환전 사실상 중단
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우리 기업과 러시아 현지 교민, 유학생 등의 대(對)러 결제 애로 해소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애로가 발생하는 원인이 여러 가지이고, 러시아로 수출하는 기업과 수입 기업, 러시아로 돈을 보내야 하는 개인 등 경제 주체에 따라서도 상황이 조금씩 다르다"면서 "부문별로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대러 제재 차원에서 거래 중단을 발표한 러시아 은행은 스베르방크(Sberbank), VEB, 프롬스비야지방크(PSB), VTB방크, 방크 오트크리티예(Otkritie), 소브콤(Sovcom)방크, 노비콤(Novikom)방크 등 7개 은행과 이들의 자회사다. 미국이 지정한 제재 대상과 유예 기간을 준용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는 오는 12일부터 미국의 제재 대상 은행 가운데 스베르방크를 제외하고 방크로시야를 추가한 7개 은행을 결제망에서 배제할 예정이다.
국내 거주자로서는 러시아의 주요 8개 은행과 거래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러시아에는 약 400개의 금융기관이 있고 미국계 씨티은행, 이탈리아계 유니크레딧, 프랑스계 로스방크 등 외국계 은행도 상당수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러시아에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이들 금융기관을 통해 제재 대상을 우회하면서 러시아로 돈을 송금하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부도 제재 대상이 아닌 은행을 통한 거래 지속 방안을 기업과 개인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추가적인 제약이 적지 않다.
우선 시중 은행들은 서방의 금융 제재가 이뤄진 지난달 말부터 루블화 환전을 사실상 중단했다.
제재 항목에 환전을 제약하는 내용은 없지만,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제재 때문에 몸을 사리면서 러시아 관련 거래를 전반적으로 기피하고 있고, 환율 변동성 때문에 위험을 떠안고 환전을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국제 외환시장에서도 루블화 거래가 급감하면서 골드만삭스 같은 시장조성자 은행들이 극도로 보수적으로 루블화를 거래하다 보니 환율 변동성이 극심하다"며 "살 때와 팔 때의 가격 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이 루블화 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를 떠안아야 해서 당분간 루블화 환전이 필요한 금융 거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달러 송금 가능, 현지에서 받기 어려울수도…수출기업, 대금 떼일 우려
현재 개인이 유학생 자녀 등을 위해 러시아 내 비(非) 제재 은행 등으로 달러를 송금하는 길은 열려있다.
다만 국내 거래 은행과 제휴를 맺은 국제 송금 네트워크 업체가 러시아로의 송금 서비스를 중단했다면 거래가 어려울 수 있다.
와이즈(Wise)와 레미틀리(Remitly) 등은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 내 송금 서비스를 중단했다.
웨스턴유니온과 제휴를 맺은 카카오뱅크[323410]의 해외송금 서비스는 현재 가능하지만 현지에서 달러 수취가 어려울 수도 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현재 송금이 가능하지만, 수취 정책은 웨스턴유니언에서 결정한다"고 말했다.
수수료가 저렴해 금융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핀테크 업체들의 서비스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 해외송금 업체인 한패스는 "현재 루블화로만 송금할 수 있고, 카드 송금 및 캐시 픽업 송금만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러시아에서 에너지 등 상품을 수입하는 기업은 수출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금융 거래 여건이 나은 편이다.
수입대금을 받아야 하는 러시아 업체가 기꺼이 제재 대상이 아닌 은행에 대체계좌를 개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체 계좌 개설에 나서는 러시아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의 2차 제재(제재 대상 러시아 은행과 거래한 제3국 은행에 대한 제재) 등을 우려한 국내 금융기관이 러시아로의 송금에 소극적인 점은 넘어야 할 산이다.
러시아 측으로부터 대금을 받아야 하는 수출기업은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거래 상대방이 러시아 현지 상황과 주거래 은행에 대한 금융 제재, 달러 조달의 어려움 등을 핑계로 대금을 치르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계약상 거래 은행이 정해져 있을 텐데 사례마다 이를 우회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지가 다를 것"이라며 "러시아 측 거래 상대방이 위기 상황이라 돈을 못 주겠다고 버틸 수 있는데, 우리나라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기 때문에 러시아 당국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루블화 대금을 받는 업체는 루블화 가치 급락, 원화로의 환전 어려움 등이 애로 사항일 수 있다.
◇ 정부 "대러 결제 애로 해소 방안 적극 검토·추진"
정부는 금융기관이 정해진 제재 수준보다 과도하게 거래를 회피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4일 이세훈 사무처장 주재로 열린 금융권 실무회의에서 제재 유예기간에 기존 계약에 따른 거래까지는 종결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은행권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이 러시아 관련 거래를 꺼리는 것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어서 금융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원전 단지를 포격하는 등 위협 수위를 높임에 따라 서방의 금융 제재가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대러 제재로 피해를 본 기업을 위해 2조원 규모의 긴급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마련, 지난 4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우리 기업과 러시아 현지 교민, 유학생 등의 대(對)러 결제 애로 해소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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