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키이우의 유령' 등은 사실 아닐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무력에선 러시아군을 이기지 못하지만 심리전에선 오히려 압도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는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하는 용감무쌍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세계인을 감동케 하면서 반전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영웅담이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7일 자국군 에이스 파일럿이 러시아 전투기를 연이어 격추하는 영상을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해당 영상은 조종사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우크라이나군 미그-29 전투기 한 대가 개전 후 30시간 동안 무려 6대의 러시아군 항공기를 격추했다면서 조종사에게 '키이우(키예프)의 유령'이란 별명을 붙였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SU)도 70만명이 구독하는 공식 텔레그램 계정에 이 영상을 공유했다. 이후 이 영상은 트위터에서만 930만명이 보는 등 세계적 관심을 모았고 키이우의 유령은 일약 전쟁영웅으로 부상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달 26일 키이우의 유령이라며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키이우의 유령은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NYT는 해당 영상에 삽입된 전투 장면이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컴퓨터 렌더링 영상으로 확인됐고, 포로셴코가 올린 사진도 실은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2019년 트윗에서 가져온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영웅 만들기는 또 있었다.
앞서 현지 매체들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본토 남단에서 48㎞ 떨어진 흑해 즈미니 섬의 국경수비대원 13명이 러시아 전함의 항복 권고에 결사 저항하다 전원 전사했다고 보도했다.
항복을 요구하는 러시아군에 당당히 "꺼져라"라고 외치고는 포격 속에 초연히 스러진 용사들의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항전을 촉구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이 대원들은 러시아군 포로가 돼 전원 생존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러시아군에 맞선 전쟁영웅과 숭고한 희생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일부 확인할 수 없거나 진위가 의심되는 내용도 섞여 있다고 NYT는 전했다.
물론 항거하기 힘든 강대국의 침략에 맞선 약소국 국민의 저항을 위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군은 포로로 잡은 러시아 병사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병사와 가족을 연결해주는 등 방식으로 러시아 내 여론을 흔드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이에 비해 러시아의 선전전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수 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해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러시아계 주민을 살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을 진주시켰다는 설득력 없는 주장만 내놓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 이언 가너는 러시아 정부가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기보다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자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선전전의 초점을 맞춘 결과라고 진단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정보전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가했다.
FT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여론을 도외시 한 채 자국 내 선전전에 몰두하고 있지만 '짧고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이미 불가능해진 데다 디지털 영상기기 보급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을 고려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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