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거론 바이든 '수출통제 예외 적용' 주목…북한 언급은 안해
국정연설서 대러제재 참여국에 '한국' 언급…긍정적 평가로 해석돼
'러시아 올인'하며 中 언급 최소화…北 패싱에 '관심끌기' 도발 우려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에워싼 민주주의 국가들의 '단합된 힘'을 강조하면서 한국도 그 중 한 국가로 직접 거명해 눈길을 끌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뭉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대응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푸틴은 틀렸다. 우리는 준비돼 있었다"고 푸틴 대통령의 오산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자유세계가 그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며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와 함께 한국을 직접 공개 거명했다.
EU 회원국이 27개국이어서 이날 언급에 포함된 국가는 모두 34개국이 되며, 이들 국가는 모두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 및 금융 제재에 동참한 나라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인식을 담은 것으로, 미국이 대(對)러시아 수출통제 제재의 하나로 적용한 해외직접생산품규제(FDPR)에서 한국을 예외 국가로 인정할지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 조항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말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는데, 여기엔 수출통제리스트(CCL) 7개 분야 57개 하위 기술 항목에 대해 FDPR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미 정부는 일찌감치 대러 독자 수출통제에 나서겠다고 밝힌 EU 27개국과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 32개국은 FDPR 규정 적용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한국은 적용 예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재 규정대로라면 한국 기업들이 FDPR 적용 대상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할 경우 미 상무부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상무부 판단이 나올 때까지 관련 제품·부품의 러시아 수출이 일시 중단되게 된다.
반면에 수출통제 적용 예외를 인정받은 국가들은 해당국 정부에서만 허가를 받으면 러시아에 수출할 수 있게 된다.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정부는 대러 제재에 뒤늦게 동참하면서 불거진 '뒷북 제재'라는 논란에 더해 제재 참여 선언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 정부로부터 FDPR 예외를 적용받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은 대러 전략물자 수출 차단,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배제, 국고채 투자 중단 등 '독자 제재식' 조치를 내놓았다.
또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상무부와 국장급 화상회의를 열어 예외 적용 문제 논의에 착수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오는 3일 미국을 찾아 상무부 장관 등과 직접 대변협상에 들어간다.
이처럼 FDPR 이슈가 현안으로 떠오른 시점에 마침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을 거론하며 평가함으로써 한국의 FDPR 적용 예외 요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언급한 34개국 중 아직 FDPR 작용 예외를 인정받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스위스 뿐이다.
일단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의 제재 동참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내비친 것은 상무부가 한국의 FDPR 적용 예외국 검토에서 전향적인 조처를 할 가능성을 높인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대러시아 제재 동참국으로서 한국을 거론했지만, 미국의 또다른 위협으로 부상 중인 북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올해 들어 무려 8차례의 미사일 무력 시위를 하고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해제를 시사했던 터라 이날 연설에서 북한 이슈를 거론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연설에서 외교·안보 부문은 러시아에 집중됐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사활을 걸고 있는 탓에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 연설에서 단골로 입에 올리던 중국에 대해서도 별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단 두 차례 '중국'이란 표현을 했지만, 이는 인프라 법안의 효과를 설명하면서 "중국과의 21세기 경제 경쟁에서 승리할 길을 열어줄 것" 등의 식으로 발언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한 차례 거명했지만, 이 역시 경제를 언급하던 와중에 "미국민에 맞서는 쪽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경고한 게 전부다.
그만큼 이번 국정연설의 관심은 러시아에 쏠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북한 패싱'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 더 큰 도발을 야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의 계속되는 무력 시위가 미국의 관심을 끌도록 해 향후 북미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측면도 있는 만큼 바이든 대통령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북한이 더 고강도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물론 북한 역시 현시점에서의 한반도 긴장 고조는 실익이 없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어 향후 북한의 선택이 주목된다.
honeyb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