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의 역설…우크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한탄
세계3위 핵무장…1994년 영토보전 대가 비핵화
국제사회 나몰라라…전문가 "북한·이란이 사태 지켜볼 것"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 규모의 핵보유국이었다. 핵탄두 약 1천700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여 발을 보유했었다고 한다. 버튼만 누르면 수십 분 안에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반복해서' 파괴할 위력이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비핵화에 나섰다. 그 해 12월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를 체결했다. 각서 체결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국, 영국,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이 참여했다. 핵을 포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독립·영토 보전을 국제사회가 약속한다는 내용이었다.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 우려가 커지던 당시에는 이 각서 체결로 '아마겟돈'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우크라이나는 핵탄두와 ICBM을 모두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했고 1996년 6월에는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겨 비핵화를 완료했다.
하지만 지금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존폐를 걱정할 처지다. 국경 코앞에 집결한 러시아군 13만 명이 숨통을 조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재 각국 대사관은 자국민 대피를 알리는 사이렌을 앞다퉈 울리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당장 우크라이나에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한다던 부다페스트 각서는 사실상 휴짓조각이었다. 위반 시 강제조항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이 현재 비핵화 압박을 받는 북한, 이란 등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영국 더타임스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의 '과학·국제안보 연구소' 설립자, 핵확산 전문가·물리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이란과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지켜볼 것"이라며 "핵무기를 포기했을 때 (국제사회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다른 사례도 찾아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위기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나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가 더 불분명해진다"며 "이런 상황 탓에 (일부 국가는) 핵무기 보유 의지가 더 확고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과거 우크라이나의 지하 수십 미터 핵미사일 발사 통제소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기만을 염원하던 핵무기 부대 출신 장교들은 당시 부다페스트 각서로 국력을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과거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한때 두 손에 핵탄두 170개를 통제·관리했던 미사일부대의 사단장 출신 미콜라 필라토프 예비역 소장(72)은 더타임스에 "우리가 지금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세계의 존중을 받고 안보도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위협에서도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다페스트의 교훈은 분명하다. 무장을 해제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거 '발사 버튼'을 담당했다던 한 예비역 대령도 "미사일을 지금도 보유하고 있었다면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며 "부다페스트 각서 탓에 우리가 나약해졌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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