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사도광산 '역사전쟁'…일본, TF 만들고 민간전문가 활용(종합)
아베 "역사 싸움 피할 수 없다"…역사 왜곡 준동
한국, 등재 저지 외교…일본에 군함도 약속 이행 압박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정부가 결국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함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역사 인식을 놓고 국제무대에서 또다시 충돌할 전망이다.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에 등록해 놓고도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함께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본이 다시 역사 왜곡을 준동하는 양상이다.
◇ 사도 강제 노역 부인하는 일본…아베 "역사 싸움 피할 수 없다"
한국 정부나 일본 학자 등의 연구에 의하면 사도 광산에서 적어도 1천여 명, 많게는 2천 명 이상의 조선인이 동원됐다.
형식은 '모집', '관(官) 알선', '징용'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강제 동원이며 조선인이 특히 위험한 작업에 다수 투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도 광산 추천을 결정하기 전부터 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사도 광산이 조선인 강제 노동 현장이라는 한국 측의 주장에 대해 "우리 입장을 토대로 반론을 하는 중"이라고 28일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사도 광산이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라는 비판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집권 자민당 주요 정치인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이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결국 역사 왜곡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2015년에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에 등록할 때 "최종적으로는 한국과 합의해 등록했지만 지금도 싸우고 있다"며 "역사 싸움을 걸어온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자민당 국회의원 단체인 '보수단결의 모임' 회의에서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반론해야 한다"고도 했다.
◇ 일본, 관계부처합동TF 만들고 민간 전문가까지 동원
기시다 총리는 28일 오후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한다는 방침을 표명하면서 한일 역사 논쟁에 총력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사도 광산이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여러 논의·의견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관계 부처가 참가하는 세계유산등록 등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 역사적 경위를 포함한 여러 논의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관방부(副)장관보(補)가 태스크포스를 이끌 것이며 민간 전문가의 지식도 활용해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키자키는 외무성에서 30년 넘게 활동한 외교 전문가다.
그는 내각관방으로 자리를 옮기기 직전에는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을 지내며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 등 갈등 현안을 놓고 한국과 외교당국 국장급 협의를 반복한 이력이 있다.
◇ 좌시할 수 없는 한국…일본, 군함도 어기고 '뒤통수'
한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기시다 총리가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추천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러한 시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성명을 냈다
그는 "우리 측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시 한국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키로 결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 정부는 한달 전 일본 문화심의회가 사도 광산을 후보로 낙점했을 때는 "본인(강제동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역이 이루어진 장소가 이에 대한 충분한 서술 없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도록 유네스코 등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2015년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록할 때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물밑 타협이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당시와 같은 합의 도출이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군함도 등재 때 내놓은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등재 심사 직전까지 한국과 협의를 거듭한 끝에 합의점을 찾아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에 등재할 수 있었다.
일본 정부 대표인 사토 구니(佐藤地) 당시 유네스코 주재 일본 대사가 2015년 7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노역을 했다"고 언급하고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일본이 군함도 등에 관해 안내하기 위해 도쿄에 설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방문자들이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의 역사를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시물을 구성했다.
심지어 산업유산정보센터 관리자인 일본 관변단체 산업유산국민회의는 8살 때부터 하시마에 살았다는 일본 남성(1933년생)이 "조선인이 훨씬 좋은 것을 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증언 영상'을 공개하는 등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경험과 동떨어진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
이런 선전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역사 문제에 관한 혐한(嫌韓) 여론이 확대하는 상황이다.
유네스코는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비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업유산정보센터 등 일본의 후속 조치를 점검하고 작년 7월 31일 자로 내놓은 결정문에서 일본 정부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해 '강하게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명하고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그들의 의지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는 것과 일본 정부의 징발 정책에 관해 이해하도록 하는 조치" 등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 등재 저지·약속 이행 압박…한일 대형선거 변수
한국 정부로서는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에 합의할 때처럼 '강제 동원의 역사를 알린다'는 방식으로 합의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이 이미 신뢰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지적하며 사도 광산의 등재를 저지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수도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사도 광산에서 동원된 조선인들이 사실상 선택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서 위험한 노역을 강요받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를 제외하고 에도 시대(1603∼1867년)까지를 대상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이나 객관적 진리 등 유네스코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사도 광산 등재 심사를 지렛대로 역이용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이 군함도의 강제 노역을 알리는 조치를 하도록 압박하고 향후 상황에 관해 협상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노무 동원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지의 문제이면서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 등에 관한 여론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주는 이슈라서 양국 정부의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3월 대선, 일본이 여름에 참의원 선거를 각각 앞두고 있어 정치 지도자들이 타협할 여지가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록 여부는 내년 6∼7월에 최종 결정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대형 선거가 종료한 후 양국 외교 라인이 접점을 모색할 여지는 남아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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