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데이터, 보험사에 풀리나…공단 수장 교체에 업계 기대
건보공단, 25일 한화생명 요청 재심의…심의위 절반이 공단 내부위원
"개인 동의 없인 불가" vs "헬스케어 서비스 발전에 긴요"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보유한 건강보험 진료·검진 데이터를 보험업계에 제공할지 결정하는 회의가 넉 달 만에 다시 열린다.
지난해 5개 보험사가 퇴짜를 맞은 후 건보공단 수장이 교체된 터라 이번에는 결론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보험업계에서 감지된다.
◇ 건보공단, 25일 한화생명 요청 재심의…작년 9월에는 미승인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이달 25일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를 열어 한화생명[088350]이 신청한 건강보험자료 제공 요청을 재심의한다.
한화생명은 작년에도 건보 데이터를 신청했으나 심의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작년 9월 심의위는 한화생명 외에도 삼성생명[032830], 교보생명, 현대해상[001450], KB손해보험의 자료 제공 신청에 대해 한꺼번에 '미승인' 결정을 내렸다.
당시 심의위는 "보험사가 제출한 연구계획서가 '과학적 연구기준에 미흡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자료 제공을 승인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연구(제약회사, 보험사 등)의 경우 회사 단독으로 연구진을 구성하기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학계나 공공연구소 연구진과의 협업 연구를 권고한다"고 주문했다.
한화생명은 이후 심의위가 지적한 사항을 보완해 다시 데이터를 신청했다.
한화생명이 이번 심의에서 자료 활용 승인을 받는다면 보험업계 전체에 건보공단 데이터 제공의 물꼬를 트게 된다.
보험업계는 이번 심의 결과가 작년 9월과 다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그사이 건보공단 이사장이 바뀌어 건보자료제공심의위의 기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심의위는 건보공단 내부위원과 외부위원, 각 7명으로 구성된다. 외부위원은 교수와 변호사 등 개인정보 분야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다. 건보공단의 의견이 심의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현재는 내부위원 1명이 결원으로 25일 회의에는 13명이 참석한다.
지난해 5개 보험사의 신청을 미승인했을 당시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정치인 출신으로 건보 데이터를 보험사에 제공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건보공단 내부위원들은 회의에서 김 전 이사장과 같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의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는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을 규정한 '정보화 3법'의 취지에 따라 보험업계의 합법적인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보험업계에 데이터 반출을 승인했다.
강도태 현 건보공단 이사장은 작년 9월까지 복지부 제2차관으로 재임한 후 지난달 29일 건보공단의 수장을 맡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새 이사장 취임이 데이터 제공 결정에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 심의를 받는 보험업계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라면서도 "지난해 심의위가 지적한 사안을 보험사가 충실하게 보완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최근 건보 데이터의 보험사 제공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낸 시민사회단체는 이사장 교체로 인해 달라진 건보공단 내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의 변혜진 연구위원은 "신임 이사장이 이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한 적은 없으나 지난해 복지부는 자료 제공에 찬성하는 쪽이었다"며 "건보공단 내부위원으로서는 기관장인 강 이사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헬스케어 서비스 발전에 긴요" vs "개인 동의 없인 불가"
보험업계는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병 환자들이 쉽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보험료 부과 형평성을 개선하려면 건보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건강보험 데이터는 헬스케어 서비스 혁신과 국민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기대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누군지 알 수 없도록 가명 처리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일 뿐 개인의 질병정보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국민건강 보장을 위해 축적한 공공의료 데이터를 보험사의 이익에 활용하는 것은 건보 데이터 구축·운영 취지와 무관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험사가 공익을 내세우고 가명 처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데이터 주체, 즉 개인의 동의 없이 보험사에 활용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변혜진 연구위원은 "국민건강을 위해 축적한 데이터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연구에 제공돼선 안 된다"며 반대했다.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은 '데이터 3법'으로 기업에 허용됐으나 민감성으로 인해 논란이 계속되는 분야다.
특히 건보공단 데이터는 가명 처리된 개인 진료정보와 건강검진 정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데이터세트만 보유한 심평원 데이터보다 활용 잠재력이 훨씬 크다고 평가된다.
자연히 개인정보 재식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뒤따른다.
보건당국은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 재식별 가능성이 없는 정도로 가명 처리 수준을 유지하도록 기준을 정하고 정신질환, 성 매개 감염병,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희귀질환, 학대 및 낙태 관련 정보 등은 공공의료 데이터 제공 대상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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