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스마트] 'CEO 100명 키우려다' 함정 빠진 카카오 김범수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100인의 최고경영자(CEO) 육성'은 김범수 카카오[035720] 의장이 회사를 설립할 때 품었던 경영 철학으로 유명하다.
김 의장은 2007년 NHN[181710]을 떠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100명의 CEO를 육성해 함께 일하면서 멘토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 의장의 이런 생각은 10여 년 만에 현실이 됐다. 2020년 12월 말 카카오의 국내 계열사는 105개, 해외 계열사 33개였으며, 작년 9월 말에는 국내 계열사 132개, 해외 계열사 42개로 더욱 불어났다.
김 의장은 자신이 계열사들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CEO들이 각사를 스타트업처럼 독립적으로 경영하도록 했다는 것이 카카오의 설명이다.
카카오는 이 때문에 '그룹'이나 '계열사' 같은 용어를 쓰지 않고 '공동체'라고 표현한다.
'카카오 공동체'의 덩치가 커질수록, 그리고 사업 확장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책임은 커졌다. 플랫폼 비즈니스로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해 가면서 '골목상권 진출' 논란과 수수료 문제가 불거졌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도 각 계열사 CEO의 리더십은 굳건했다.
금융 계열사인 카카오뱅크[323410]와 카카오페이가 작년에 굳이 3개월 간격으로 기업공개(IPO)를 할 때도 아무도 막지 않았다.
그러나 김 의장이 키운 CEO의 '독립적이고 수평적인 경영'의 결과가 주주들에게까지 손해를 끼쳤을 때, 주주들의 분노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카카오페이 류영준 현 대표와 신원근 차기 대표 내정자 등 카카오페이 임원 8명은 회사 상장 약 한 달 만인 지난달 10일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받은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878억원을 현금화했다.
이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포괄임금제로 초과근무 수당 없이 일하는 카카오페이 직원들에게도 큰 상실감을 줬다.
결국 류 대표는 차기 카카오 대표 내정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계열사들이 독립 경영을 한다지만, 상장할 때는 카카오라는 '이름값'의 혜택을 톡톡하게 누리고 있다.
카카오게임즈[293490]는 2020년 9월 공모주 청약에서 경쟁률이 1천524.85대 1에 달해 당시 기준 최대 열풍을 일으켰다. 바로 다음 달 공모주 청약을 받은 빅히트(현 하이브)도 카카오게임즈 투자 열기를 이기지 못했다.
뒤이어 작년 8월과 11월에 연달아 IPO를 한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도 카카오 이름 덕을 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카카오가 내세우는 김범수 의장의 'CEO 육성 정신'이 실은 '자기 사람 챙기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현 대표는 김 의장과 같은 삼성SDS 출신이고,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다음 출신으로 카카오 부사장을 지냈다. 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NHN 출신이다.
김 의장도 상장 모회사로서 카카오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달라진 것을 인식하고 변화를 모색하겠다고는 하고 있다.
김 의장은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거셌던 작년 9월 주요 계열사 대표 회의를 열고 "카카오와 모든 계열 회사들은 지난 10년간 추구해왔던 성장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장을 위해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새해 들어서는 기존 카카오 계열사 사이 조율을 맡던 '공동체 컨센서스(consensus·합의)센터'의 이름을 '공동체 얼라인먼트(alignment·정렬)센터'(CAC)로 바꾸고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센터장을 맡도록 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15일 "김 의장이 애초 창업자, 기업 대표를 키우겠다는 취지에 기댔더라도 그 기업 대표가 개인적인 이득을 더 우선시한 것은 관리하지 못한 것이고, 의도가 좋았더라도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한다"고 말했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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