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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러시아 우크라이나 위기 협상 험로 예고
유럽 내 세력권 양보 쉽지 않을 듯…신냉전 본격화 가능성
미국, 동맹과 공조 강조…러시아 안보 요구 관철 난망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서방과 러시아 간 연쇄 협상이 시작됐다.
이번 협상에서는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된다.
이번 담판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과거 동서 냉전의 주역이었던 미국과 러시아가 유럽에서의 세력권을 둘러싸고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東進)을 막을 법적인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유럽 내 영향력을 서방이 인정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옛 소련권 국가에 대한 '과거의 지분'을 포기할 수 없다는 러시아의 속내도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 안보를 논의하는 이번 협상에 유럽연합(EU)이 배제된 데 대해 EU 집행부는 당혹해하고 있다. 2차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2월 당시 소련 영토였던 크림반도 휴양지 얄타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부가 모여 유럽의 세력권을 분할했던 것처럼 이번 협상에서 두 강대국이 유럽의 의사와 상관 없이 유럽 안보 지형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유럽의 안보 구조를 결정하는 협상에 EU가 중립적인 구경꾼이 될 수는 없다"라며 "유럽의 안보는 단순히 미국·러시아, 나토·러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EU가 관련된 문제"라고 못 박았다.
그는 미국과 나토에 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러시아가 진정으로 유럽 안보를 논의하려면 EU를 협상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러시아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유럽 동맹국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협상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안전보장 안에서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나토의 동진 중단 등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우리는 새 회원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며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개방성은 나토 조약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안보 위협을 느끼는 러시아의 입장도 강경하다. 옛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되는 과정에서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됐다. 반면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체인 나토는 소련 영향력 아래 있던 동유럽 국가로 확장을 거듭했다.
러시아는 나토가 독일 통일 과정에서 통일 독일의 영토를 넘어서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옛 소련권 국가를 받아들여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나토는 1999년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3국을, 뒤이어 2004년에는 발트 3국,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옛 소련권 7개국을 끌어들이며 확장을 계속했다. 2009년에는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나토에 가입했다. 2017년에는 몬테네그로,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각각 가입해 나토 동맹국은 30개국으로 늘어났다.
나토는 또 2008년에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제기하고 이후 이들 국가와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
특히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러시아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를 두고 "러시아의 보복을 촉발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노골적으로 경고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가 즉각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번 협상의 러시아 측 대표인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협상에 앞서 "우리는 어떤 양보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은 전혀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나토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러시아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에도 우리는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전망이 어두운 협상이지만 협상 자리가 마련된 것만 해도 일정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서방과 러시아가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협상 테이블에 나선 것은 양측 모두 군사적 충돌은 피하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유럽에서 러시아와 전선을 확대하는 데는 큰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토적 야심보다는 나토 확대를 저지하는 법적인 보장을 얻어내려는 목적이 더 절실하다. 러시아는 군사적 위협을 통해 안전보장 요구를 의제로 올린 것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번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위기 상황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고 미국과 러시아 간 유럽 내 세력권 확보 경쟁이 가열될 경우 '신냉전'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한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국경에 약 10만 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미국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안보보장 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자국의 안보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찬을 겸한 사전 협상을 벌인 데 이어 10일 러시아가 제안한 안전보장 안과 관련한 공식 협상을 벌인다.
12일에는 나토-러시아 협상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13일에는 러시아-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협상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토와 러시아 간 회담은 나토·러시아위원회(NRC) 형식으로 열린다. NRC는 양측 간 분쟁을 막고 협력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2002년 설치된 기구다.
OSCE는 나토 회원국과 옛 소련 국가 및 모든 유럽 국가들을 포괄하는 범유럽 안보협의체다.
songb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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