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서 통합·분리 반복했던 기재부…예산 기능 쪼개질까
이재명 "예산편성 기능 청와대 직속으로"…권한 집중 우려도
"조직 개편, 여건 변화 반영해야"…"목표와 내용이 중요"
(세종=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기획재정부의 조직 분리가 화두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기재부의 힘이 너무 세다면서 예산 편성 기능을 떼어 내 청와대 직할로 두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기재부를 포함한 정부 조직 개편은 대선 때마다 쟁점이 돼 왔지만, 코로나19 이후 6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기재부의 존재감이 한층 더 커진 상황이라 특히 이목이 쏠린다.
◇ 국정철학·시대적 필요 따라 기획예산 기능 통합·분리 반복
기재부는 경제정책 방향의 수립과 총괄 조정, 자원 배분(예산), 조세, 국고 및 재정건전성 관리 업무 등을 담당하는 부처다. 외국환과 국제금융 관련 정책, 대외 경제협력 증진, 공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도 수행한다.
기재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직하면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돼 있다.
기재부가 늘 이런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는 국정철학과 시대적 필요를 반영해 정부 조직을 개편해왔고 이 과정에서 기재부도 분리와 통합을 반복했다.
기재부의 모태는 1948년 정부 수립으로 탄생한 재무부와 기획처다. 기획처는 1961년 경제기획원으로 확대되면서 예산을 편성하고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았다. 재무부는 세제·국고·금융·통화·외환 정책을 담당했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가 1994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했다. 세입·세출 기능을 연계해 효율성을 높이고 '작은 정부'를 구현한다는 취지였으나, 역설적으로 '공룡 부처'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축소 개편했다. 재정경제원에 정책 수단이 집중돼 정부 내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고, 조직도 비대해 외환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예산 기능은 대통령 소속 기획예산위원회(예산편성지침의 작성)와 재정경제부 외청인 예산청(예산 편성·집행 사무)이 담당하다가 이후 국무총리실 소속 기획예산처로 재편됐고, 금융감독 기능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신설됐다. 통화신용정책 기능은 한국은행으로 이관됐다.
지금 형태의 기재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재정경제부에서 금융 정책을 뺀 나머지 부분과 예산편성 기능을 통합해 지금의 기재부를 만들고 힘을 실어줬다. 금융 정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와 통합해 금융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정책 조정 기능을 예산·세제 등 정책 수단과 연결해 실효성을 높이고 정책 일관성,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재정 건전성 관리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 기획예산 기능 분리한다면…대통령 소속 vs 국무총리실 소속
이재명 후보는 예산편성권을 쥔 기재부가 선출 권력인 대통령의 지휘에도 충실히 따르지 않고, 다른 부처의 상급 부처 역할을 해 부처의 자율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기재부가 추경 편성·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놓고 번번이 민주당과 충돌해 국정철학을 예산으로 실현하는 데 차질이 생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지난 4일 연합뉴스TV '뉴스프라임'에 출연해 "옛날에 한 것처럼 (재무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하자"며 "미국 방식으로, 예산이 제일 중요하니 직접 (대통령) 직할로 두는 게 좋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예산 편성 기능을) 국회에 넘기면 진짜 정치화된다"며 "오히려 비효율이 발생한다면 백악관 방식이 효율적이고 정치화를 막는 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계에서도 예산 편성 기능을 청와대 직속으로 두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한국행정포럼 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의 기획재정부가 가지고 있는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은 대통령 산하 위원회인 '국가미래위원회'를 신설해 수행하도록 하고, 예산 부문은 청와대 정책실이 직접 관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국정 어젠다를 실천하고, 예산을 통한 정책조정 기능을 실제로 청와대에서 수행하게 된다"며 "대통령 어젠더 외의 예산에 대해서는 각 부처의 예산 편성 자율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경우 청와대가 너무 비대해진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예산 편성 기능을 떼어 청와대 밑에 두겠다는 이 후보의 구상에 대해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게 아니냐"며 "민주주의의 역행"이라고 비판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1차 정부 조직 개편 당시 대통령 직속으로 기획예산처를 신설하려 했으나 야당이 대통령으로의 권한 집중을 우려해 반대하면서 기획예산위와 예산청을 각각 신설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바 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는 지적이 있는 마당에 예산권까지 청와대로 가게 되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쏠리고 총리실의 힘은 더 약화할 것"이라며 "기획예산처를 만들되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두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은 정책 조정을 담당하고 있지만, 조정에 필요한 권한이 부족한 상황인데 예산 기능이 생기면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쪼개기가 능사?…"조직 개편 목표와 내용이 중요"
정부 조직 개편을 논의할 때 단순히 '기재부 권한이 너무 크니까' 또는 '말을 잘 듣지 않아서' 힘을 빼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교수는 "공무원들이 정치 권력의 의지에 저항할 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국익에 어긋난다는 소신 때문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예산, 기획, 거시경제, 조세, 금융 기능 중에 어떤 것을 떼어내도 시너지 효과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한 부처가 네 기능을 다 가지면 공룡이 된다"며 "정답이 없기 때문에 조직 개편 자체가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고 목표와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는 경제와 사회 영역을 아우르는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기획예산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성장 외에 사회 통합과 삶의 질 등 다른 국가 목표도 중요해진 만큼 여건 변화에 맞게 정부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며 "기획예산 기능을 경제 기능으로부터 분리해야 경제를 초월하는 종합적인 정책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예산 기능을 기재부에서 분리할 경우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을 기재부가 이관받고, 금융위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전환하는 시나리오가 함께 거론된다.
기재부(국제금융)와 금융위(국내금융)로 나뉜 금융 정책 기능을 통합하고 금융감독 기능의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을 분리하면 경제 정책의 추진 동력이 떨어지고 경제 정책 전반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축소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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