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사상자 급증, 정부 '조준사살' 초강경 대응(종합)
토카예프 대통령 "강도들과는 협상없어"…푸틴 대통령과 대응 논의
러 공수부대 등 옛소련권 병력 파견…서방은 '폭력중단' 요구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중앙아 국가 카자흐스탄에서 연료비 급등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7일(현지시간) 최대 도시 알마티를 중심으로 엿새째 계속됐다.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시위대 사상자는 50명을 넘어섰고, 진압 군경 가운데서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시위대를 '살인자'라고 부르며, 군에 이들에 대한 경고 없는 조준사격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군경과 시위대의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의 공수부대를 포함한 옛소련권 안보동맹의 병력이 현지에 파견되고 서방은 카자흐스탄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멈출 것을 요구해 시위사태가 동서 진영 간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인다.
◇ 사상자 급증 속 무력 충돌 계속
타스·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내무부(경찰) 공보실은 이날 오후 "현재까지 전국에서 3천811명의 시위 참가자가 체포됐다"면서 "26명이 사살되고, 같은 수가 부상했다"고 밝혔다.
진압 군경 가운데서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내무부는 앞서 전날 "질서 확보 과정에서 18명의 보안요원이 숨지고, 748명의 경찰과 국가근위대 소속 군인들이 부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군경과 시위대 충돌은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가장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양측의 사상자도 알마티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새벽부터 시작된 군경의 시위대 무력진압 작전은 이날도 계속됐다.
타스 통신은 알마티 현지 발로 7일 오전 시내 공화국 광장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던 총성이 저녁 무렵이 되면서 상당히 줄어들었으나 광장은 여전히 자동소총을 든 군인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군용트럭과 장갑차도 배치돼 있다고 소개했다.
통신은 또 광장과 주변 도로에는 간밤에 총격을 받은 자동차들이 버려져 있으며, 차 안에는 숨진 사람들이 있지만 여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다고 참상을 전했다.
앞서 전날 저녁엔 알마티 현지 TV 방송사 취재팀이 시청으로 취재를 하러 가던 도중 정체불명의 총격을 받거나 알마티에서 멀지 않은 알마티주 주도 탈디코르간에서 복면을 한 수십명이 구치소를 공격하는 사건 등이 곳곳에서 발생해 여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알마티와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여전히 인터넷 접속이 거의 되지 않고 있고, 전화 통화도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전화도 사실상 차단됐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 대통령은 '조준사살' 승인…"살인자들과는 협상 못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시위대를 '살인자'로 지칭하면서 군에 이들에 대한 '조준사살'을 승인했다고 밝히는 등 강경한 진압 방침을 밝혀 평화적인 사태 해결은 난망해 보인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로 방영된 대국민 담화에서 시위대와는 협상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사회 일각의 '협상' 요구를 일축하면서 "범죄자, 살인자들과 어떻게 협상을 한단 말인가. 우리는 국내와 외국에서 온 무장하고 훈련받은 강도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들은 강도이고 테러리스트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대 도시) 알마티를 약 2만명의 강도들이 공격했다. 알마티와 다른 지역 당국이 공격 징후를 미리 포착하지 못했다"면서 보안당국의 대처 미흡을 지적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소위 자유 언론매체와 외국의 운동가들이 카자흐스탄의 소요를 선동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법률 파괴주의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테러 작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반군은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거나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그들과의 싸움을 끝까지 밀고 가야 한다. 항복하지 않는 자는 제거될 것"이라고 단호함을 보였다.
이어 "상황 안정화에 따라 일부 지역의 인터넷을 일정 시간 동안 연결하도록 지시했다"면서 "하지만 자유로운 인터넷 접근이 비방과 모욕, 선동적 호소를 자유롭게 게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러시아 공수부대 등 옛 소련권 병력 투입, 임무 시작
카자흐스탄 대통령 행정실은 자국 정부의 요청으로 투입되는 옛 소련국가 안보협의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평화유지군 선발대가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행정실은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은 카자흐스탄 군경 특수부대가 수행하고 CSTO 평화유지군은 이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면서, 평화유지군은 국가 주요시설 경비 임무만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파견되는 병력 규모는 2천500명인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러시아 병력 1진이 6일 현지에 도착해 작전에 착수했다.
CSTO 평화유지군에는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 군인들이 포함됐다.
국가별 병력 현황은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아르메니아가 100명, 키르기스스탄이 150명, 타지키스탄이 100~200명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진 점에 비춰볼 때, 사실상 러시아 공수부대가 평화유지군의 핵심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평화유지군 지휘도 러시아 공수부대 사령관 안드레이 세르듀코프 대장이 맡았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CSTO 평화유지군의 카자흐스탄 파견에 대해 "이 군대는 짧은 기간 (안전) 보호와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에 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과 7일 연이어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하고 시위 사태 대응에 대해 논의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 등과도 카자흐스탄 사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서방은 "폭력 중단하라…카자흐 국민 도울 준비 돼 있다"
유럽연합(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프랑스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카자흐스탄의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폭력 사태의 중단을 촉구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권리와 안전이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며 "EU는 가능한 한 도움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러시아 군대의 파견 배경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위 사태에 충분히 대응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데, 왜 외부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카자흐스탄 당국과 이 나라에 주둔한 외국 군대에 '국제 인권기준'을 준수토록 할 것을 촉구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우려를 갖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으며 모두가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과 세계는 (카자흐스탄에서) 어떠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반대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보낸 구두 메시지에서 "당신이 중요한 시기에 단호하게 강력한 조치를 취해 사태를 신속히 수습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과 임무, 국가와 인민에 대해 고도의 책임감 있는 입장을 체현했다"고 지지를 표명했다.
시 주석은 "중국 측은 어떤 세력이든 카자흐 안정을 파괴하고 안보를 위협하는 것과 카자흐 국민의 평온한 생활을 파괴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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