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로 80㎞ 마비된 美고속도로…영하에 24시간 넘게 발묶여(종합)
3일 40㎝ 폭설로 시작된 정체, 4일 오후까지 지속…열차 운행도 중단
쓰러진 나무·차량 충돌에 어린이 2명 등 5명 사망…수십만 가구 정전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수전 팰런은 월요일인 3일(현지시간) 오후 8시 미국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를 떠나 I-95 고속도로를 탔다.
눈이 많이 왔지만 목적지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팰런은 고속도로 위에 멈춰 선 차 안에서 밤을 꼬박 보냈다. 화요일인 4일 아침 7시까지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커녕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이 움직일 기미도 없었다.
전날 쏟아진 폭설로 도로가 마비된 탓이다. 고속도로 중간에 대형 트럭 여러 대가 사고가 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심한 정체가 더욱 심해졌다.
팰런은 CNN방송에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면서 "이건 기록적"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팰런은 차에 기름이라도 가득 채운 상태였다. 바깥 기온은 밤새 영하였다.
팰런은 운전자들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기름을 아끼려고 시동을 껐다가 히터를 잠깐씩 틀며 버텼다고 전했다.
I-95는 플로리다주부터 메인주까지 미국 동부 지역을 남북으로 길게 잇는 주(州)간 고속도로다.
정초부터 쏟아진 폭설에 중간 즈음인 워싱턴DC와 버지니아주 구간이 마비되면서 무려 80㎞나 정체가 이어진 것이다.
버지니아주가 지역구인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정체에 꼼짝 못 한 주민 중 한 명이었다.
케인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어제 오후 1시에 워싱턴DC로 출발했고 보통 2시간 거리였는데 19시간이 지나 아직도 의회 근처에 가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역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고장 난 차량을 옮기기 위한 장비들조차 접근을 못하고 있다며 "끔찍하고 괴로운 경험"이라고 했다.
결국 케인 의원은 27시간이 걸려 워싱턴DC의 의회 의사당에 도착했다.
정체가 이날 오후까지 풀리지 않으면서 길게는 24시간 넘게 꼬박 도로에 갇힌 이들이 속출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운전자들은 교통상황에 대한 기본적 안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추위와 배고픔, 불안에 떨어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4시간만에 도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로니라는 이름의 59세 여성은 WP에 이날 아침이 돼서야 버지니아 당국의 안내 문자를 받았다면서 "모두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시대에 아무 안내도 없었다. 폭설이 아니라 당국의 대응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빠져나가야 하는 출구를 불과 30m 남겨놓고 16시간을 도로에 묶여 있었던 한 주민은 AP통신에 "16시간 동안 경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저 충격적인 일"이라고 털어놨다.
교통당국은 이날 중 도로가 정리돼 정체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밤까지 작업이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떠나 뉴욕으로 가던 열차도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인근에서 쓰러진 나무가 철로를 덮쳐 3일 오전부터 운행이 중단됐다.
한 승객은 AP에 음식이 제공되기는 했으나 화장실이 넘치고 승객들이 분노했다고 전했다.
워싱턴DC를 비롯해 주변 지역 일대에 40㎝가 넘는 폭설이 쏟아지면서 최소 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메릴랜드주에서는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 차량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테네시주와 조지아주에서는 나무가 쓰러져 주택을 덮치면서 각각 7세·5세 어린이가 숨졌다.
정전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오전 버지니아 주에서만 약 30만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며 조지아주와 메릴랜드주에서도 40만 가구가 정전 상태라고 CNN은 전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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