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옷 사러갔다 경찰 총탄에 숨진 소녀…스러진 아메리칸 드림
용의자 방향으로 세 발의 총성…그 뒤엔 소녀 숨어있던 탈의실
'안전한 나라, 기회의 나라'서 공부하려 반년 전 칠레에서 미국행
경찰, 고객 있는 매장서 총기 사용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옷가게에서 지난 23일 경찰이 강력범을 향해 쏜 총에 맞은 소녀는 로봇공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안고 반년 전 미국으로 건너온 14세 칠레 출신 발렌티나 오레야나-페랄타였다.
소녀는 당시 노스할리우드 지역에 있는 매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남성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용의자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28일(현지시간) CNN방송 등에 따르면 숨진 피해자 페랄타의 어머니는 이날 로스앤젤레스 경찰국(LAPD) 본부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딸과 약 6개월 전 칠레에서 미국으로 왔다고 소개하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당시 딸과 함께 매장에서 크리스마스에 입을 옷을 쇼핑하던 중 비명소리를 듣고 몸을 숨겼다고 한다.
어머니는 "우린 앉아서 서로를 붙잡고 기도했다"며 사고 이후 "딸은 총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고 내 품에서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며 "자녀가 품에서 죽는 것을 직접 보는 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에 속한다"고 비통해했다.
유족에 따르면 페랄타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음에도 새로운 학교에 다니며 우수한 학생으로 적응하고 있었다고 한다.
페랄타의 아버지는 "딸에게 여기를 떠나자고 했더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기회의 나라'라면서 오히려 날 말렸다"며 "이제 내 딸은 이 나라의 손에 죽었다"고 말했다.
전날 LAPD는 당시 상황을 담은 매장 방범 카메라와 경찰 보디캠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영상에는 나시와 반바지를 입은 20대 용의자가 자전거를 가지고 매장에 입장, 잠시 후 다시 긴소매 점퍼와 긴 바지를 입고 나타나더니 여성 고객을 공격하는 등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담겼다.
이후 경찰 보디캠을 보면 경찰관이 용의자를 찾아 소총을 겨눴고, 세 발의 총성이 들리고 이내 용의자가 바닥에 쓰러진다.
사건 이후 페랄타는 매장 탈의실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페랄타 삼촌은 "소녀의 아메리칸드림이 빼앗겼다"며 "세계 최고여야 할 경찰서에서 조카를 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총기 사용에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볼티모어 경찰국 차장이었던 앤서니 바크스데일은 CNN에 당시 경찰의 소총 사용이 정당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매장에서 총탄을 발사하게 되면 총알은 사람 몸을 쉽게 관통하고 벽도 뚫고 움직인다"며 "무력 행사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당시 용의자는 피해자나 경찰을 향해 다가오려고 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고 덧붙였다. 공격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의자도 경찰의 총에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당시 총을 쏜 경찰관은 최소 2주간의 유급 행정휴직을 떠난 상황이다.
미셸 무어 LAPD 국장은 해당 사고와 관련해 유감을 표하며 완전하고 투명한 조사를 약속했다. 에릭 가세티 LA 시장도 사고에 대해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대응을 약속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LAPD 경찰관이 사살한 사람은 18명으로 지난해 대비 2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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