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투석기 환자 내보내라?"…병실이동명령에 현장 한숨
"대부분 소견서 제출하고 전원 거부…의료진 업무만 가중"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증상 발생 20일이 지난 중증병상 환자 210명에게 전원 이동명령을 내린 데 대해 의료현장에서 "실효성은 없고 서류 업무만 늘어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달 20일 42개 의료기관의 코로나19 중증병상 장기 재원자 210명에게 격리병상에서 일반병상으로 병원이나 병실을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명 절차를 밟으면 격리병상에서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이 때문에 오히려 의료진들의 행정 업무만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를 중환자 병상에서 뺄 수 없기 때문에 소명서 작성이 고스란히 담당 의사와 간호사의 추가 업무가 된다는 것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내과 의사들은 중환자실을 위험한 장소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병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자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면서 "지금은 소견서 작성, 환자와 보호자에게 명령서 전달까지 의료진들한테 하라고 하니 일만 늘려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소명서에는 환자 최근 상태, 각종 검사 결과, 임상 데이터를 모두 적게 돼 있어 (길병원이 전원 명령을 받은) 8명에 대해 모두 작성하려면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며 "이 귀중한 시간은 환자를 돌보는 데 써도 시원찮은 판"이라고 강조했다.
'증상 발현일 이후 20일 경과'라는 기준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며, 의료현장을 모르고 세운 지침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첫 증상 후 20일이 지났으나 중증으로 이환된 지는 1주도 안 된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을 빼야 하는 모양새다.
서울 소재 A대학병원 관계자는 "전원(병원 이동) 명령 대상자 대부분은 호흡기를 달고 있거나 투석 중인 환자라 실제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고 여러 차례 타 병원에 의뢰하고 있는데 갈 수 있는 병원이 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B대학병원 관계자는 "전원에 성공해도 환자들이 일반 중환자실로 가니까 코로나19가 아닌 질환으로 입원해야 하는 환자들 입원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응급실을 통해 들어오는 일반 질환 환자들을 수용할 병상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대한중환자의학회도 정부 행정명령 지침이 나오자 "병원에서 중환자로 악화하는 환자, 응급 수술 후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 응급실로 내원하는 중환자 등 다양한 비(非)코로나19 중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첫 전원 및 전실 행정명령을 내린 210명 중 87명은 일반병실로 옮겼고 11명은 이동을 앞두고 있다. 명령 일자 20일부터 병원에서 답변을 수령한 시점(21∼23일)까지 사망한 사람은 2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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