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미국 주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싱가포르는 왜 빠졌을까
트럼프 시절 중국과 관계 가까워져서? 민주주의·언론자유지수 하위권 때문?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미국 정부가 내달 화상으로 주최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아시아의 강소국 싱가포르가 빠져 눈길을 끈다.
25일 현재 미 국무부 웹사이트의 초청국 리스트를 보면 110개국가량이 올라와 있지만, 싱가포르 이름은 없다.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를 규합해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겠다는 취지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다.
특히 미중 경쟁 구도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 등을 견제하는 성격이라는 해석이 많다.
다만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철권통치 중인 필리핀은 초청국에 포함됐지만, 터키와 싱가포르, 헝가리, 이집트 등은 배제돼 기준을 두고 논란도 있다.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의 제외는 당연하다 치더라도, 싱가포르가 빠진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싱가포르가 미국과 오랜 동맹관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외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 1990년 미국은 싱가포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MOU는 미군의 싱가포르 해·공군 기지 사용은 물론, 미군 인력과 항공기, 함정 등의 수송을 위한 군수 지원도 담고 있다. 중국의 '뒷마당'인 동남아에서 미군이 활동할 수 있는 근거다.
지난 2019년 연장돼 오는 2035년까지 유효하다.
그러나 이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동남아 관계가 상대적으로 소원해졌고, 이 기간 싱가포르가 중국과 가까워졌다는 관측이 나온 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싱가포르는 최근에는 중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지지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의 CPTPP 가입 노력을 영향력 확대 시도로 보고 견제하는 분위기다.
물론 싱가포르가 민주주의 측면에서 박한 평가를 받는 게 원인일 수도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강소국이다.
국토 면적은 서울보다 약간 크고 인구는 약 545만명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유한 나라다.
그러나 민주주의로 국한하면 다른 평가가 나온다.
1965년 독립 이후 신생 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 전반에 대한 강력한 통제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많다.
올 초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0'(Democracy Index 2020)에서 싱가포르는 6.03으로 세계 74위로 평가됐다.
이는 아시아에서 대만(8.94점·11위)과 일본(8.13점·21위), 한국(8.01점·23위)은 물론, 말레이시아(7.19점·39위), 인도(6.61점·53위), 필리핀(6.56점·55위)에도 뒤지는 수치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 순위에서도 싱가포르는 180개국 중 160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전날 중국의 관영 글로벌타임스에는 싱가포르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되지 않은데 대해 주잉(朱穎) 중국 시난정법대 교수의 비판 목소리가 실렸다.
주 교수는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가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됐다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편협해졌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작 싱가포르에서는 민주주의 정상회의 배제를 다룬 언론 기사나 내부 반발 기류는 딱히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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