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서 되찾은 결백…강간 누명 흑인 4명 72년만에 무죄
1949년 백인여성 성폭행 신고…경찰 구타 못견디고 거짓 자백
2명은 당시 총맞아 사망…항소법원, 사형·종신형 모두 무효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흑인 남성 4명의 누명이 사건 발생 72년 만에 공식적으로 벗겨졌다. 당사자는 모두 사망한 뒤다.
22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CNN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플로리다 레이크 카운티 항소법원의 하이디 데이비스 판사는 이들 4명의 강간 혐의 기소는 취하하고, 유죄 판결은 무효로 해달라는 주 당국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이른바 '그로블랜드 4인방'으로 불리던 어니스트 토마스, 새뮤얼 셰퍼드에 대한 강간 혐의 기소가 취하되고, 찰스 그린리, 월터 어빈의 유죄 선고도 무효가 됐다.
이들에 대한 판결은 인종 간 분리를 합법화한 '짐크로 법' 시행 시기의 대표적인 사법 오류로 꼽힌다.
문제의 사건은 1949년에 발생했다.
17살 노라 패짓의 신고로 4인방이 경찰에 붙잡혔다. 패짓은 올랜도 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도시 그로블랜드에서 차가 고장 났는데, 4인방이 현장에서 자신을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체포된 이들 4명은 모두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으나 경찰의 강압 수사와 대중의 분노가 이어졌다. 이들이 범행을 부인할수록 매질만 더해졌다. 당시 보안관이 이들을 폭행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매질을 견디지 못한 토마스는 도주했다가 1천명 규모의 추격대에 의해 적발돼 현장에서 사살됐다. 토마스의 몸에는 총 400여방 이상 총상이 남았다.
남은 3명 가운데 어빈을 제외한 2명은 결국 폭행을 멈추기 위해 거짓 자백을 했다. 법원에서는 이들의 범행을 입증할 물증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전원 백인이었던 배심원은 토마스, 셰퍼드에게는 사형을, 그린리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해버렸다. 그린리는 당시 16살에 불과해 사형 선고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증언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실제 강간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2명은 흑인 인권단체 등의 조력 등을 받아 항소심에서 원심 선고 파기를 이끌어냈다.
이들의 고초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기심을 위해 지방법원으로 옮겨지던 차 안에서 당시 호송을 담당하던 보안관이 셰퍼드와 어빈을 총으로 쏜 것이다. 셰퍼드는 현장에서 숨졌고, 어빈은 죽은 척을 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어빈은 나중에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어빈과 그린리는 나중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누명을 벗지 못한 채 각각 1969년과 2012년에 숨을 거뒀다.
그린리의 딸 캐럴은 이날 판결 후 취재진 앞에서 감정에 복받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아버지가 남을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아는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강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늘 사랑하고 포용하겠다"고 말했다.
주 검찰청의 빌 글래드슨 검사는 "72년간 유가족들이 이것(오명)과 함께 살았다. 오늘을 기다리며 인생의 여정을 보냈다"고 위로를 전했다.
이날 법원 판결에 앞서서도, 이들에 대한 행정·정치적인 사면은 여러 차례 내려진 바 있다.
지난 2019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옳은 일을 하기에 늦었을 때란 없다. 70년 동안 이 4명의 역사가 잘못 쓰여졌다"면서 사후(死後) 사면령을 내렸다.
2017년에는 주 하원이 해당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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