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기어가 '난민 수호자' 된 사연…"부끄러웠다"
가디언 인터뷰…2년전 이탈리아서 난민구조선 저지 당시 회고
이탈리아 극우 지도자 맞서 증언 예정…"목격자이기에 알리는 것"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신실한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도움이 필요한 난민들을 도와주는 게 범죄라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탈리아 극우 정치인에 맞서 법정에 서는 리처드 기어(72)가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난민 수호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증인으로 나선 각오 등을 밝혔다.
2019년 8월, 지중해에서 구조된 아프리카 이주민 147명을 태운 스페인계 국제구호단체 '오픈 암스'(Open Arms) 구조선이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에 입항하지 못하고 인근 해상에 3주간 떠 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탈리아 당국이 입항을 불허한 탓이다. 이에 탑승자는 한여름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런 정책을 주도한 내무장관인 극우 정당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은 지난 4월 납치 및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9월 15일 첫 공판이 열렸다.
당시 구조선에 난민을 돕는 자원봉사자 일원으로 타고 있던 기어는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하게 됐다.
인터뷰에 따르면 기어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한 친구에게서 이 인도적 위기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는 "친구가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불법이 됐다'고 말하자 내가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구호를 불허하는 당국 조치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에 자원봉사자로 나선 기어는 난민들에게 음식과 물을 전달하려 했으나 이탈리아 당국이 해당 구조선으로 접근을 차단했으며, 배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한 현지 주민이 유명 배우인 기어를 알아보고 배를 제공했지만, 그마저도 배가 소형이어서 식량을 잔뜩 실은 후 그 위에 인원이 앉아서 이동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배에 도착한 기어는 굶주린 난민을 보고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도 동료 인간이자 굶주리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입은 우리의 형제·자매를 포용하지 못하는 데 부끄러웠다"고 밝혔다.
그는 "난민들은 배가 다시 리비아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으면 물에 빠져서 익사하려고 했을 것"이라면서 "(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빛을 가져다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방법을 고민하던 기어는 배 위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에게 전화해 이들 중 일부를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체스 총리는 이미 스페인이 모로코에서 많은 난민을 데려왔으며 스페인 총리로서 시민이 허락한 범위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기어는 그때 본 구조선의 광경이 증인으로 나서게 된 동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관심은 큰 고통을 받는 그 난민들"라이면서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내 본능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대부분 사람보다 조금 더 깊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목격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요청을 받는다면 목격한 내용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언제 법정에 출석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이번 재판이 정치적 재판이라고 비판해온 살비니는 스스로 기어의 증인 출석 사실을 공개하며 재판이 '쇼'로 변질됐다고 비꼬았으며,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조르자 멜로니 대표도 기어를 '이목을 좇는 배우'라고 비판했다.
이에 기어는 "이 정치인들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지만, 이들이 구조선에 한번 가보는 데 시간을 썼는지, 인간적인 경험을 해봤는지,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처지인 그 난민들을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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