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백신 미접종도 해고·입사 취소 사유가 된다?
채용 공고에 '백신 접종자'로 제한했으면 입사 취소해도 문제 안 돼
해고에는 해석 갈려…"사유 안 된다" vs "상황 따라 정당화될 수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을 위해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정책을 확대하면서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백신 미접종을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거나 입사가 취소됐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사장이 왜 안 맞냐고 묻기에 주변에 부작용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 때문에 무서워서 못 맞겠다고 했더니 오늘부로 사직서를 쓰고 나가라고 해서 퇴사했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면접 보고 합격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입사 예정이었는데 백신을 앞으로 맞을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입사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더라"고 했다.
면접 시 회사에서 백신 접종 여부를 물어보거나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취업준비생의 글도 있었다.
백신 접종이 법적 강제가 아니라 '권고' 사항인 상황에서 백신 미접종을 이유로 취업에 불이익을 주거나 해고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일까.
일단 채용 단계를 나눠서 살펴보면, 회사가 채용을 위해 낸 모집 공고에 '백신 접종자'를 조건으로 내거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부용 고용노동부 공정채용기반과장은 "채용 공고상에 백신 접종자여야 된다고 하는 것은 개별 기업의 판단이기 때문에 존중되며, 과태료가 물리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사업장의 필요에 따라 면접에서 백신 접종 여부를 물어보는 것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은 구직자의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과 출신 지역·혼인·재산, 직계 존비속과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을 응시원서나 이력서 등에 기재하도록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모집 요건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민경현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회사도 원하는 인재를 뽑을 자유가 있고 백신 접종을 회사 내부의 건강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백신 미접종을 조건으로 삼아 채용하지 않은 것은 정당화할 수 있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집 공고나 채용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백신 미접종에 대한 별도의 고지가 없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채용절차법은 구인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 광고의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거나 채용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 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상 정규직을 뽑는다고 공고한 뒤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임금 조건이나 근무 장소 등을 열악하게 바꾸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이미 합격을 통보한 뒤에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던 백신 미접종을 이유로 입사를 취소했다면 이는 부당한 조치로 볼 여지가 있다.
오영민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이미 합격 발표를 했는데 단지 백신 미접종만을 이유로 합격을 취소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고 보여진다"며 "법원에서도 채용이 내정됐다가 정당한 이유 없이 취소한 것에 대해서는 부당해고와 유사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손해배상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2019년 공기업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에게 최종 합격을 통보한 뒤 응시 자격을 이유로 뒤늦게 임용을 취소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례는 회사가 채용 내정자에게 채용 내정 혹은 최종 합격 통지를 함으로써 양자 간에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됐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2002년 옛 현대전자가 입사 시험에 합격한 채용 내정자들에게 IMF 사태에 따른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입사를 취소한 것은 정당한 정리해고에 해당하나, 최종합격을 통보받은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 입사예정일부터 정당한 근로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입사예정일부터 해고통보일까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다만 백신 미접종을 사유로 채용 내정을 취소하거나 해고하는 것에 대해서는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백신 미접종 자체를 해고 사유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사업장의 특성이나 취업 규칙 등에 따라 정당한 해고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다른 근로자의 건강이나 안전을 위한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백신 미접종만으로 해고를 정당화한다거나 채용이 내정된 사람의 내정을 취소하기는 어렵다"며 "이는 해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양지웅 법무법인 이평 변호사는 "회사의 업종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순히 백신을 안 맞았다고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며 "(백신의) 의학적인 결과가 100% 안전한 것이 아니고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강제한다는 것은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부당해고에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이어 "회사에서 필요하다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서 음성 결과를 제출하는 식으로 (백신 접종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강제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오상원 법무법인 태림 변호사는 "개인의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취업 규칙의 내용이 아닌데도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는 사유만으로 채용을 취소하거나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회사의 업종 등을 고려했을 때 백신 접종이 필요한 업종이거나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면 반드시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사안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법적 다툼이 벌어질 경우 법원의 해석에 따라 해고의 정당성 여부가 갈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창수 변호사는 "지금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백신 미접종으로 인한 해고를 정당하다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며 "회사의 취업 규칙에 해고 사유가 한정적으로 열거된 상태에서 그에 해당하지 않은 백신 미접종을 사유로 해고했다면 부당해고지만, 사회 통념과 같은 일반 조항이 (해고 사유에) 있다면 부당해고인지에 대한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경현 변호사는 "백신 미접종이 해고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공익성 등을 놓고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며 "회사 내부 구성원의 건강을 우선시할지, 백신을 맞지 않을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할지는 가치 판단의 문제여서 실제 법적 다툼이 벌어질 경우 법원의 해석에 달렸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추진단)에 따르면 이달 3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받은 누적 인원은 4천126만9천453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작년 12월 기준 5천134만9천116명)의 80.4% 수준이다. 18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접종률은 92.4%다. 바꿔 말하면 18세 이상 인구 중 7.6%는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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