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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피란민 치료한 독일 간호사 "필요한 때 도와서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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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피란민 치료한 독일 간호사 "필요한 때 도와서 다행"
"한국인 워낙 사랑스러웠던 기억…남북통일의 길 열리길"
조현옥 주독대사, 평화의 사도 메달 수여…"깊은 감사"

(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필요한 때 많이 도울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워낙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조금만 더 젊었다면 다시 가라고 해도 즐거이 갔을 겁니다"

구순의 잉게보르크 베스트팔(95) 씨는 한국을 이렇게 기억했다.
베스트팔 씨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9월 독일(당시 서독)이 한국에 파견한 의료지원단의 일원으로 부산적십자병원에서 1년 반 동안 전쟁부상자와 피란민을 치료했던 간호사였다.
당시 부산으로 파견됐던 117명의 독일 의료진은 정전협정 뒤 1954년부터 5년간 폐허에 가까웠던 부산에서 25만여명을 치료하고, 1만5천여건의 수술을 했다.
임신부 6천여명의 출산을 돕는 일도 이들의 몫이었다.
베스트팔 씨는 전쟁이 막 끝난 한국에 갈 결단을 어떻게 하게 됐느냐고 묻자 "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고,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디서 일을 하느냐는 아무래도 좋았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곳에 갔고 실제로 많이 도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라고 기억했다.
그는 전쟁 직후 한국에 처음 갔을 때는 심각하고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떤 여성은 병원 건물에 다다르지 못하고 정문 앞에서 출산했고 부모를 모두 잃어 병원에서 키웠던 소녀도 있었다고 한다.
베스트팔 씨는 40여 년이 지나고서 2000년대 동생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한국이 너무 멋지게 발전해 기억속에 있던 한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더는 비참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는 "나는 한국에 기꺼이 머물렀고, 기꺼이 도움을 줬다"면서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국전의 참상을 직접 보고 겪은 만큼 남북 관계에도 여전히 관심이 크다고 했다.
그는 "통일의 길이 열리려다가 다시 닫혀 너무 아쉽다"라며 "전쟁 뒤에 다시 회복돼 놀랍게 발전한 모습을 보면 결국 제 길을 갈 것으로 본다"라고 기대했다.
또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종선 선언도 물론 지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합뉴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한국어로 "나는 잉게보르크 할머니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조현옥 주독일대사는 지난달 29일 베스트팔렌 간호사를 주독한국대사관으로 초청해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하고, 한국인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했다.
조 대사는 "한국 국민은 독일의 의료지원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을 대표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크리스티안 로이터 독일 적십자 사무총장은 이날 수여식에서 "부산에 의료지원단 파견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첫 해외지원 협력 사업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면서 "이렇게 의미 있는 메달 수여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도린 푸어 독일적십자 베를린간호사회 수간호사도 "베스타팔 씨처럼 우리 간호사들은 필요한 현장에 있었다"면서 "오늘의 표창은 현장에 있는 간호사 모두를 대표해 받는 것인 만큼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평화의 사도 메달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용사에게 한국 정부가 감사를 표하기 위해 수여하는 메달이다.
정부는 2018년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5월부터 부산에 적십자병원을 설립해 의료지원 활동을 펼친 독일을 '6·25 전쟁 의료지원국(참전국)'으로 추가 지정했다.
yuls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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