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가고 싶은데'…태평양 섬나라 빠지는 유엔기후총회
대부분 코로나 청정지역…대표단 장기간 격리 등 감당 안 돼
'가장 큰 위기 맞은 태평양 섬나라 목소리 반영 안 될 듯' 우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6)에 태평양 섬나라 3분의 1이 코로나19를 이유로 고위직을 보내지 않기로 한 것으로 나타나 맥빠진 행사가 될 우려가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일(현지시간) 13개 태평양 섬 국가들이 다음 달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COP26 회의에 국가수반 등 지도자급 인사를 참석시키기로 했지만 7개국은 고위직 대신 해외 대표부 관계자를 보낼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바닷물 수위 상승으로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이들 나라가 직접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그만큼 그들의 의견이 회의에서 반영될 수 없다.
바누아투의 여당 정치인인 랄프 레겐바누는 "우리는 회의에 참석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바누아투에선 직접 참석하는 인사가 없을 것이며 다른 나라들도 소규모 파견단을 보낼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회의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 국가가 파견단을 축소하게 된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다. 대부분의 태평양 국가는 그동안 국경을 폐쇄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았거나 감염자가 있어도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태평양 섬나라 국가수반들이 총회가 열리는 글래스고까지 이동하면 한 달 이상의 격리가 필요할 수 있다.
주 피지 마셜제도 대사인 알본 이소다는 "우리는 정말 고위급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총회에 보내고 싶다"라면서도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장기간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마셜제도엔 지금까지 4명의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지만, 이곳으로 돌아오는 여행객은 하와이를 거쳐 와야 해 하와이에서 2주, 마셜제도에서 다시 2주간 격리돼야 한다.
이소다는 "태평양 국가들이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기에 다른 국가 지도자들은 더욱 총회 개최를 통해 부여받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대양을 건너고 산을 넘어 겨우 거기까지 가는데 '네 알겠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 총회에서 논의하죠'라는 식으로 말하며 우리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태평양 지역 민간단체 대표들은 코로나 규제로 더욱 총회 참석이 어려울 수 있다.
'태평양 기후 액션 네트워크'의 피지 대표인 라베탄날라기 세루는 "활동가들의 COP26 참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들 역시 격리 때문에 한 달가량 일을 쉬어야 하는 데다 코로나 이전보다 거의 두 배가 뛴 항공료와 스코틀랜드의 높은 숙박비를 감당하기 어려울뿐더러 코로나바이러스를 고향에 옮기게 될 수 있다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세루는 "예년에는 태평양 지역에서 70~80명의 민간단체 파견단이 총회에 갔지만 올해에는 20~30명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시민단체는 총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라며 "우리는 총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를 세밀히 분석하고 태평양 국민들에게 전달해 태평양 국가를 비롯해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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