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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시다 6천900자 연설서 한국 언급은 딱 두 문장(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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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시다 6천900자 연설서 한국 언급은 딱 두 문장(종합)
한일관계 변화 기대 어려워…'한국이 해법 제시해야' 재확인
외무상 유임으로 기존 노선 고수·수출규제 담당 각료는 극우 하기우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8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첫 국회 연설에서는 한일 관계의 변화를 기대할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연설문 자체는 한국의 중요성을 거론했으나 한일 관계 회복 의지를 드러내기에는 분량이나 표현 모두 미흡했고 작년보다 인색한 측면도 있다.
기시다 총리는 8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행한 첫 소신 표명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다.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연설은 약 6천900자 분량이었지만 한국에 관한 언급은 이 두 문장에 불과했다.
한국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1년 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총리보다 낮게 평가했다.
작년 10월 스가는 "한국은 매우(極めて·기와메테) 중요한 이웃 나라다. 건전한 일한(한일)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기시다는 스가와 비슷한 얘기를 하면서 '매우'를 뺀 것이다. '기와메테'는 극히, 더없이, 지극히, 매우 등으로 번역된다.
다만 스가가 올해 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며 이미 '매우'를 뺐는데 기시다 총리가 이를 이어받은 양상이다.

2019년 10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도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본이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 판결 등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자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한 지 한 달 반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던 상황에서 썼던 표현이 소신 표명 연설에 다시 나온 것은 한일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북한, 중국, 러시아, 한국 등 일본의 주요 외교 상대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마지막에 거론됐다.
외교가의 한 인사는 스가가 한국의 중요성을 기시다보다 강조하기는 했지만 한일 관계에서 눈에 띄는 진전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서 '단어나 표현의 미세한 변화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기시다는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며 일제 강점기 가해 행위와 관련된 양국 갈등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일관된 입장이라는 것은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 등이 1965년 합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의미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로 다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 측의 인식이다. 기시다는 당시 합의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위안부 합의가 "세계가 높이 평가한 합의"라면서 "이것조차 지키지 않으면 미래를 향해 무엇을 약속하더라도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대화는 필요하지만, 한국은 그 기본을 확실히 지키면서 생각하면 좋겠다. 볼(공)은 한국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기시다 총리는 '다 끝난 일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한국이며 이 두 사안의 재판과 후속 절차는 모두 국제법이나 국가 간 약속 위반'이라는 일본 정부의 견해를 에둘러 제시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간 이들 문제의 해법을 한국이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이런 태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인데 일본은 '우리가 수용할 해결책을 한국이 가져오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대화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이다.
아베·스가 정권에서 형성된 한일 관계 경색 국면이 당분간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기시다 정권의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이런 관측이 가능하다.
아베 정권 말기에 임명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스가 정권을 거쳐 기시다 정권에서도 유임됐다.
외교 정책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와 아소 다로(麻生太郞)가 집권 자민당 간사장과 부총리로 각각 임명되는 등 아베의 측근이 요직을 장악했다.
극우 사관을 옹호한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를 경제산업상으로 임명해 수출 규제 완화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이달 말 총선과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이라서 기시다가 여론의 반발 가능성을 감수하고 한국과 타협하기도 어렵다.
임기를 고려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직접 담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 정국에서 한국 내 대일 강경론이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기시다는 한국에 인색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일 관계 개선 의지는 강하게 표명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조건 없는 만남, 납치·핵·미사일 문제의 포괄적 해결, 불행한 과거 청산, 북일 수교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다만 외부에 공개된 북한과 일본의 공식 대화 자체가 사실상 단절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구상에 가깝다.
작년에 스가 총리가 언급했던 것을 대체로 따라 한 모양새다.
다만 "북한에 의한 핵·미사일 개발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단호한 표현을 사용한 점은 작년과 다르다.
북한이 신무기를 속속 개발해 일본의 요격망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대두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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