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서 모로코 통해 스페인으로 가는 가스관 계약 10월 종료
"외교 채널 없어 협상 어려울 듯…해저 가스관은 용량 부족"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북아프리카의 '앙숙' 알제리와 모로코가 갈등 끝에 외교 관계까지 단절하면서 유럽 남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가스 공급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3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아프리카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알제리는 지난 1996년부터 '가즈 머그레브 유럽'(GME) 가스관을 통해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 연간 수십 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해왔다.
GME 가스관은 알제리 최대 가스전인 하시 르멜에서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까지 1천620㎞에 걸쳐 있다. 또 스페인-포르투갈 가스관과 연결돼 포르투갈까지 가스가 공급된다.
522㎞에 달하는 모로코 구간은 모로코 정부 소유이며,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 3국의 합작사인 메트라가즈가 운영한다.
문제는 지중해 연안 이웃 국가인 알제리와 모로코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오는 10월 모로코와의 GME 가스관 계약이 종료된다는 점이다.
앞서 알제리는 지난달 24일 모로코가 적대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1천427㎞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양국은 서사하라 문제와 국경 문제 등으로 수십 년간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는데 지난달 고온 건조한 날씨 속에 발생한 산불이 단교의 원인이 됐다.
알제리는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낸 산불이 방화로 인한 것이며, 그 배후에 모로코의 지원을 받으며 자국 북부 카빌리 지역의 자치 운동을 펴온 '카빌리 자결'(MAK)이 있다고 주장했다. 알제리는 MAK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알제리는 지난 22일에는 같은 이유로 모로코 민간 항공기와 군용기의 자국 영공 진입도 금지했다.
가스관은 1994년 양국이 국경을 걸어 잠근 이후에도 계속 열려 있었다. 가스관 운영이 공급자인 알제리와 통행세를 받는 모로코 양쪽에 이익이 됐기 때문이다.
모로코는 통행세 명목으로 연간 전체 가스 수입량 10억㎥의 절반을 공짜로 이용해왔는데, 이를 액수로 환산하면 5천만 달러(약 592억 원)에 달한다. 알제리도 최단 거리의 GME 가스관을 이용하면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알제리에서는 이미 외교관계 단절로 가스관 운영 계약 갱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우회로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모하메드 아르카브 알제리 에너지 장관은 지난달 현지 주재 스페인 대사에게 공급 물량을 모로코를 경유하지 않는 해저 파이프를 통할 준비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GME 가스관 전문가인 제프 포터는 AFP통신에 "내달 말까지 GME 가스관 협약 갱신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며 "양국 외교 채널이 부족하기 때문에 협상의 길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알제리는 GME 가스관 대신 지중해 해저를 통해 스페인으로 직접 연결되는 메드가즈(Medgaz) 가스관을 사용할 수 있지만, 해저 가스관의 최대 공급량은 연간 80억㎥로 스페인 수출량의 절반에 불과하다.
알제리와 프랑스는 향후 메드가즈 가스관 공급량을 연간 최대 100억㎥까지 늘리기로 했지만, 수요를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북아프리카의 에너지 전문가인 로저 카르발류는 "알제리는 GME 가스관을 끊으면 모로코의 안정적인 수입원을 빼앗고 값싼 가스 공급도 그만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알제리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가스를 공급할 책무가 있고 GME 가스관을 닫는다면 막대한 가스 판매 수익도 포기해야 하므로 우회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결국 알제리-모로코 분쟁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가스 공급 불안으로 귀결되고 가스 가격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 컨설팅업체 포커스 이코노믹스의 매슈 커닝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전역의 가스 가격 상승세 속에 스페인도 엄청난 공급난에 직면할 것"이라며 "스페인은 다른 공급처를 찾거나 대체 에너지원을 통해 가스 수요에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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