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문화대혁명 떠올리는 중국의 '정풍운동'
당국, 경제·교육·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 강도 높은 규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 역할, 현재는 샤오펀훙이 맡은 듯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중국이 최근 한 20대 여성의 연설에 열광했다.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도 아닌 22살 대학생이 학교 입학식에서 한 연설이다.
기자와 아나운서를 양성하는 베이징 촨메이(傳媒)대 3학년 펑린(馮琳)이 학교 입학식에서 재학생 대표로 연설을 한 것은 지난 12일이다.
그녀는 무대에서 "나는 중국 인민의 아나운서, 중국공산당의 아나운서"라며 "중국 인민의 승전과 좌절, 승리를 향한 목소리를 전하고, 중국 공산당의 정정당당한 진리의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식 사회자였던 치웨(齊越)가 한 말이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펑린의 이른바 '충성 맹세'는 온라인에서 1억3천만 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으니, '열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녀는 지난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당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앞에 선 '천안문 맹세' 4인방의 주역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에 열광하는 중국 일부 젊은이들을 보면 중국 잡지 삼련생활주간(三聯生活周刊)의 쑹스팅(宋詩?) 기자가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청년들의 모습에 "한편의 공포 영화 같았다. 몇 초 만에 모골이 송연해졌다"고 말한 게 이해된다.
최근 중국 각 분야에서는 이처럼 모골이 송연해지는 '정풍운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1년 판 정풍운동의 첫 번째 타깃은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이 이끌던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은 마윈의 중국 금융당국 비판 발언 뒤 상장 무기한 연기 등 각종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滴滴出行)은 미국 상장을 추진했다가 온라인에서 사라졌다.
중국공산당의 눈 밖에 나는 순간 기업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학교에서는 시진핑 사상 배우기가 한창이다.
이번 학기부터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 '시진핑 사상'이라는 과목이 생겼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제목의 교과서도 보급됐다.
중국 국가교재위원회는 "시진핑 사상을 학습하는 것은 당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라고 강조했다.
대중문화는 홍색 정풍운동의 칼바람이 가장 거센 분야다.
중국 정부는 최근 정솽(鄭爽·탈세 혐의)과 크리스(중국명 우이판·吳亦凡·성폭행 혐의) 등 일부 연예인의 비위가 드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각종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방송 규제기구인 광전총국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의 출연을 원천 봉쇄하는 고강도 규제를 내놨다.
규제 대상에는 문제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이 정확하지 않고, 당과 국가와 한마음 한뜻이 아닌 사람'도 포함했다.
중국공산당의 정책을 거스른 연예인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과 마찬가지로 '퇴출'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연예인들도 시 주석의 발언을 공부하고 의미와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며 시진핑 사상을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사회 전반을 강타하는 일련의 정풍운동이 시 주석의 3연임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국가 주석의 임기제한 규정을 폐지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한 길을 터놓은 상태다.
정풍운동은 시 주석이 빈부격차를 극복하고 미국에 맞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끌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 중 하나라는 해석이다.
중국의 정풍운동을 보고 있노라면 1966년부터 1976년 사이 중국을 강타한 문화대혁명이 떠오른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 있었다면 현재는 맹목적 애국주의를 내세우는 '샤오펀훙'(小粉紅)이 그 역할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미국 CNN도 최근 "중국 내부에서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선전 선동을 위한 연예계 규제가 문화대혁명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분명한 것은 문화대혁명이 피비린내 나는 숙청 바람과 함께 중국의 쇠퇴를 몰고 왔듯이 정치나 이념에 치우친 제재와 압박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달성한 중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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