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다가온 '루게릭병' 정복, 치료 열쇠 '마이크로RNA' 발견
운동 뉴런의 근육 신호에 관여하는 유전자 200개 제어
미국 소크 연구소 연구진, 저널 '뉴런'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은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를, 전등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유전자가 정상이면 질병에 걸리지 않고,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질병을 유발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 건 아니다.
대개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이른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서로 다르다.
이 '임계 문턱(critical threshold)'에 근접할 만큼 유전자가 발현해도 전혀 증상이 없다가 이를 넘어서는 순간 중증 질환으로 돌변하곤 한다.
일명 루게릭병(ALS·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을 비롯한 여러 신경정신 질환의 증상이, 특정 마이크로 RNA(miRNA)의 미세한 발현도 변화와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발견은 유전자 발현 수위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암 등 다른 질환에도 적용될 수 있다.
미국 소크 연구소의 새뮤얼 패프(Samuel Pfaff) 신경생물학 석좌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26일(현지 시각) 저널 '뉴런(Neuron)'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패프 교수는 "뉴런(신경세포)의 유전자 조절 기제라는 측면에서 많은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라면서 "실험 대상은 생쥐 모델이었지만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거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ALS는 운동 뉴런이 손상돼 근육 마비로 이어지는 신경 질환이다.
이 질환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서 지금까지 발견된 관련 유전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중 다수는 공통으로 마이크로 RNA의 생성과 연관성을 보인다.
마이크로 RNA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처럼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조절 분자다.
연구팀은 먼저 ALS 환자의 마이크로 RNA 수위를 조사한 다른 기관의 선행 연구 결과를 재검토했다.
모든 연구에서 발현도가 낮은데 완전히 꺼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고된 마이크로 RNA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miR-218이었다.
운동 뉴런이 정상 기능을 하려면 miR-218이 특정한 수위로 발현해야 한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ALS가 생기게 조작한 생쥐 모델 실험에서, 근육 마비와 세포 사멸을 초래하는 임계점의 윤곽이 드러났다.
miR-218의 발현도가 정상 수위의 36%를 초과하면 신경 근육 접합부가 정상이고, 7% 미만이면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miR-218은 약 300개 유전자의 기능을 제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다수는 운동 뉴런의 축삭 돌기(axon) 성장과 근육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생성 정보를 가진 것들이었다.
이 마이크로 RNA의 발현 수위가 정상 대비 36% 밑으로 떨어지면, 뉴런이 근육에 신호를 보내는 경로가 극적으로 감소했다.
연구팀은 miR-218의 유전자 제어를, 300명의 단원을 섬세하게 이끄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했다.
이 세밀한 조절 기제를 더 연구하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돌연변이가 어떻게 뇌 질환 위험을 키우는지 알게 될 거로 연구팀은 기대한다.
궁극적으로 이런 성과는 질병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변화의 핵심을 건드리는 새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루게릭병에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마이크로 RNA의 발현도 변화와 관련이 있는 조현병(schizophrenia) 등 다른 신경계 질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패프 교수는 "유전자나 노화와 연관된 암 등 다른 질병에서도 이런 과정이 나타날 수 있다"라면서 "유전 질환이 어떻게 발아해 진행하는지 실험할 새로운 동물 모델을 개발하면, 기저 메커니즘을 확인해 전반적인 이해를 심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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