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아프간 장악에 파키스탄 총리 "정신적 노예 족쇄 깼다"
"정신적 노예가 더 나빠"…친미 성향 정부 비난하며 탈레반 은근 두둔
방글라도 "탈레반 정부가 자국민 지지받을 경우 문호 개방"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미국과 갈등 관계인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에 대해 "노예의 족쇄를 깨트렸다"는 입장을 밝혔다.
17일 돈(DAWN) 등 파키스탄 언론에 따르면 칸 총리는 전날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한 교육 관련 행사장에서 이같이 말했다.
칸 총리는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받아들일 경우 그에 노예가 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며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자유로워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신적 노예가 실제 노예 상태보다 더 나쁘다"며 "아프간 국민은 노예의 족쇄를 깨뜨렸다"고 강조했다.
칸 총리는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친미 성향인 아프간 정부의 통치 아래에서 살았던 국민을 노예에 빗댄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을 비난하면서 탈레반이 이끌 새로운 통치 체제를 은근히 두둔한 셈이다.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서구 각국의 입장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파키스탄과 미국은 1980년대 아프간에서 소련군과 싸우는 반군 무자헤딘을 함께 지원할 정도로 가까웠으나 지금은 관계가 상당히 멀어진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1월 테러리스트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파키스탄 군사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칸 총리는 지난달 말 미국 PBS 뉴스아워와 인터뷰에서도 아프간 이슈는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하지만 미국은 군사 해법을 시도하면서 아프간의 상황을 아주 망쳐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전통적으로 탈레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파키스탄 군 당국이 탈레반의 승리는 필연적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는 탈레반을 응원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 결성 이후 파키스탄의 군사 지원 속에 급속히 힘을 키워나갔다.
특히 파키스탄에 사는 파슈툰족은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에서 양성한 '학생'을 탈레반 전사로 꾸준히 지원해왔다. 탈레반의 세력 기반은 양국에 걸쳐 사는 파슈툰족이다.
다만,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같은 의혹에 대해 파키스탄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이와 함께 아프간 난민이 자국 내로 밀려들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칸 총리는 PBS 뉴스아워와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은 이미 300만명의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였는데 더 많은 난민이 유입될 수 있다"며 "우리의 경제가 난민을 더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 말했다.
한편,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도 탈레반의 집권에 대해 날을 세우지 않는 분위기다.
AK 압둘 모멘 방글라데시 외교부 장관은 전날 아프간의 새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멘 장관은 "우리는 민주적 정부와 국민이 좋아하는 정부를 믿는다"며 "탈레반 정부가 자국민에게 지지를 받을 경우 방글라데시와의 문호는 분명히 열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멘 장관도 탈레반 정부에 의한 인권 침해 가능성 등 서구권에서 제기되는 여러 우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탈레반 정부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을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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