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도쿄올림픽 대미 장식한 아프리카계
남자 1~3위, 여자 1~2위 등 마라톤 시상대 '독차지'
'신인류' 장거리 주자 하산도 에티오피아 난민 출신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 사상 처음으로 1년이나 연기된 끝에 가까스로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의 대미를 아프리카계가 장식했다.
지난 8일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는 마지막 메달 수여식이 있었다.
바로 올림픽의 최종 하이라이트 마라톤이다.
이번 대회 남녀 마라톤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메달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다.
전날 여자 마라톤에서는 금메달과 은메달을 동아프리카 케냐 출신 선수들이 차지했다.
남자 마라톤에서도 역시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금메달을 차지하고, 아프리카 출신들인 네덜란드와 벨기에 선수가 각각 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마라톤의 은메달리스트 아브니 나게예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16살 때 네덜란드 가정에 입양돼 국적을 얻었다. 네덜란드 국적 선수가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메달을 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바시르 아브디 역시 내전에 찌든 소말리아에서 태어났고, 생계를 위해 먼저 이주한 어머니를 따라 9살 때 벨기에로 가 정착했다.
그래서인지 결승선을 막판 눈앞에 두고 2위 나게예가 손짓을 하며 아브디를 격려해 같이 메달권에 들어왔다. 메달은 못 땄지만 4위 역시 케냐 선수였다.
폐회식 사상 최초의 남녀 마라토너 동반 시상에 케냐 국기가 연이어 가장 높이 솟아오르고,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폐회식에 참석한 다른 종목 선수들의 박수를 일제히 받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메달 수여자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예방 백신 접종률도 가장 낮은 열악한 대륙인 아프리카 출신들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올림픽 마지막 시상대에 우뚝 선 것이다.
케냐는 마라톤의 선전 덕분에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가장 많은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로 종합 19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16위)에 비해 불과 3계단 아래였다.
13일 남아공 주간지 메일&가디언 최신호에 따르면 역대 3번째로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한 킵초게는 "나는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전 세계 모든 이에게 영감을 주고 싶은 거대한 계획이 있다"면서 "케냐인들에게 영감을 주길 원하고, 달리기를 케냐의 라이프스타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난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제발 집중하고 스스로 절제하며 무엇보다 스포츠를 소중히 하고 스포츠를 진짜 전문직으로 삼아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신인류'라는 별명답게 10,000m와 5,0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고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육상 중·장거리 3종목에서 메달을 목에 건 시판 하산도 네덜란드 국적이지만 에티오피아 난민 출신이다.
달리기에서 중거리 1,500m와 장거리 5,000m, 10,000m는 '전혀 다른 종목'으로 평가되는 만큼 하산은 올림픽 육상 역사 초유의 '대사건'을 일으켰다.
1993년 에티오피아 아다마에서 태어난 그는 "살기 위해서" 10대 때인 2008년 고향을 떠난 난민 신분으로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정착했다. 에티오피아는 지금도 북부 티그라이 사태로 내전 와중에 있다.
가난한 난민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에 하고 싶던 수영이나 배구는 돈이 들어 안된다고 해서 못 했다. 결국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밖에 없어 뛰어든 게 전설의 시작이 됐다.
그는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트랙에서 풀었다고 말했다.
남자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나게예도 사실상 네덜란드로 간 아프리카 난민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 난민의 잠재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다가 조난당하는 비극적 주인공들로 뉴스에 주로 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이들도 무사히 정착하거나 본국에서도 여건만 되면 이렇게 멋진 꿈을 이룰 수 있음을 이번 올림픽 시상대에서 보여줬다.
도쿄 올림픽 아프리카 메달리스트들의 대조적인 후일담 하나.
서남아프리카 나미비아의 10대 육상선수 크리스틴 음보마는 지난 10일 나미비아 첫 여성 메달리스트로 금의환향했다. 음보마는 여자 200m 달리기에서 은메달을 땄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수도 빈트후크의 호세아 쿠타코 국제공항에서는 18세인 음보마가 타고 온 상업용 제트기 위로 뿌려지는 물대포 환영식이 열렸다. 이어 소방차 무개 트럭을 타고 시내 중심가를 퍼레이드하는 동안 거리에는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포츠연맹 및 올림픽위원회는 자국의 유일한 메달리스트 2명에게 재정난 때문에 보너스를 주지 못한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다시 파트너들과 협상해 지급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남아공 타티아나 스쿤마커는 2개의 올림픽 신기록과 1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여자 평영 200m에서 금메달, 평영 100m에서 은메달을 각각 땄고, 비앙카 부이텐다그는 여자 서핑에서 은메달을 건졌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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