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vs 늑대' 중국 외교가 세대교체 속 노선 갈등
홍콩매체 "미중 갈등에 전랑외교 부상"…"국방부, 시진핑에 우려 표명"
"문화대혁명기 경험이 외교관의 세계관에 영향"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중국이 갈수록 공격적인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기존의 평화 지향적인 '판다(곰) 외교' 노선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9일 보도했다.
미중 갈등 고조 속 전랑 외교에 점점 더 힘이 쏠리는 상황이지만, 중국의 이미지 악화라는 부작용 탓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는 설명이다.
늑대전사 외교는 중국의 애국주의 흥행 영화 제목인 '전랑'에 빗대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는 중국의 외교를 지칭한다.
이와 반대로 판다 외교는 중국이 자국을 상징하는 판다를 외국에 보내 친선·우의의 사절로 활용해온 외교를 뜻한다.
◇ 전랑 외교 부작용 우려 발언 보도 삭제
중국 국제관계대 교수이자 중국 싱크탱크 중국세계화센터(CCG) 부주임인 추인(?殷)은 지난달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대외홍보 방법과 관련한 세미나에서 "내부 선전을 대외 홍보에 반영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초창기 우리는 정확한 영어 구사 능력이 중국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며 "이제 우리는 유창하고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하지만 우리의 외국 파트너들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식의 외교방식은 중국과 다른 나라 간 갈등과 문화적 오해를 낳고, 중국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 전문성은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해당 발언은 다음날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화교 신문인 연합조보(聯合朝報)를 통해 첫 보도된 후 퍼져나갔다.
그러나 연합조보는 보도 다음날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중국 매체들도 모두 관련 기사를 삭제했다.
SCMP는 "추 교수의 발언은 최근 몇년간 증가한 중국의 공격적 전랑 외교를 비판한 것으로 보였다"며 "중국 외교부가 매우 실망했다는 경고를 추 교수가 고위층으로부터 전달받은 후 연합조보의 기사가 삭제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와 관련해 연합조보와 추 교수 모두 입장 표명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 교수의 친구는 "추 교수는 자신의 우려를 표명했을 뿐"이라며 "그런 평범한 발언이 우려를 낳고 심지어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게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SCMP는 "추 교수의 발언에 대한 반발은 중국 외교가에서 판다 외교관과 전랑 외교관 사이 큰 갈등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 2017년부터 전랑 외교 부상…"인민해방군마저 비판"
중국은 수십년간 정책과 이미지를 홍보하면서 국내와 대외용의 각기 다른 방식을 채택했다. 대외적으로는 겸손하고 평화적인 톤으로 대표되는 '판다 외교'를 고수해왔다.
2017년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09년 신중국 건국 60주년을 기점으로 대외 이미지 홍보 예산을 대폭 확대했다.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글로벌 언론 네트워크 지원에 투입했다.
그러나 2017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강국 건설을 위한 새 시대로 진입했다"고 선언하면서 전통적인 판다 외교는 전랑 외교로 대체됐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중국 전문가 데이비드 샴보 교수는 "중국이 대외 선전을 위해 쏟아부은 돈은 헛돈"이라며 "중국은 대외 이미지 개선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미지를 훼손하고 상처를 줬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공산당 정치국 30차 집단 학습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홍보작업을 강조했다. 이에 중국의 전랑 외교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學習時報)의 전 편집장인 덩위원(鄧聿文)은 미중이 모든 전선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전량 외교가 힘을 키우고 있으며, 중국 애국주의자들 역시 미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공격적인 외교부를 칭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랑 외교는 외교부 내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다른 부처와도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전랑 외교에 대해 중국 국방부가 우려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 소식통은 "외교부의 매파 전랑들은 인민해방군(중국군)마저 미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너무 부드럽고 약하다고 비판한다"면서 "인민해방군은 시 주석에 전랑 외교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고 외교부의 무책임한 발언에 따른 비용을 자신들이 지불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 "문화대혁명기 경험이 외교관의 세계관에 영향"
판다 외교와 전랑 외교는 외교관들이 문화대혁명기(1966~1976년)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날 SCMP는 추이톈카이(崔天凱·68) 전 주미 대사와 친강(秦剛·55) 현 주미 대사의 세대 차이는 13세라는 나이와 연공 서열보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집권기를 어떻게 보냈느냐로 설명된다고 분석했다.
문화대혁명기에 다른 수백만 중국인처럼 농촌으로 추방돼 힘겨운 시기를 보낸 추이톈카이는 그러한 개인적 경험과 트라우마가 평생 깊이 각인돼 있지만,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고 중국의 고도성장과 미국의 여러 실수·실패를 목도한 세대에 속한 친강은 자신감과 세계관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SCMP는 "중국 정부가 최근 노화하는 고위 외교관 라인업을 정비하면서 친강·셰펑(謝鋒) 등 50대를 승진시켰고, 심지어 화춘잉(華春瑩) 등 1970년대에 태어난 더 어린 외교관들도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그러나 중국이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외교부를 이끄는 양제츠(楊潔?·71)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왕이(王毅·67)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대신할 인물을 찾는 것이 최대 과제로 보인다고 봤다.
이어 "전문가들은 외교관들의 세대 교체 속 후임자들이 성공적으로 전임자들의 막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신세대 외교관들이 공격적인 태도와 자세는 보여줬지만 역량은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중국해양대 팡중잉(龐中英) 교수는 떠오르는 젊은 외교관들과 그들의 전임자 간 지식의 격차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신세대 외교관들이 정말로 미국과 유럽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들이 진정 세계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을까?"며 "우리는 아직 진짜 도전에 대처하는 젊은 외교관들의 역량을 보지 못했고 그들은 새로운 직책에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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