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다툼 속에 갱단까지 활개…'대통령 암살' 아이티 혼란 극심
수도 포르토프랭스 시민들, 미 대사관에 몰려 망명 요청하기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피살 후 카리브해 아이티의 혼돈이 더욱 극에 달하고 있다.
공석이 된 정상 자리를 놓고 현 총리와 총리 지명자, 상원의장까지 뒤섞여 권력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갱단까지 나서 투쟁을 선언하며 더 큰 혼란을 예고했다.
11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갱단 'G9' 두목인 지미 셰리지에는 전날 영상 메시지에서 지난 7일 발생한 모이즈 대통령 암살이 "아이티 국민에 대한 국가적·국제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경찰 출신의 셰리지에와 그의 일당은 모이즈 대통령의 우파 정당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그는 경찰과 야권이 '역겨운 부르주아'들과 야합했다고 비난하며 "아이티 국민을 위해 무기를 사용하겠다. 전쟁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카리브해 빈국 아이티에서는 이미 모이즈 대통령 피살 전부터 갱단의 범죄가 급증해 치안이 극도로 악화한 상황이었다.
특히 수도 포르토프랭스에는 'G9'을 비롯해 최소 30개의 범죄조직이 도시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부자들을 물론 서민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고, 주택과 상점에 대한 절도와 방화도 일삼았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9개월간 1만4천 명가량의 포르토프랭스 시민이 갱단의 폭력을 피해 집을 떠났다. 극심한 범죄 탓에 상점과 학교가 문을 닫고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대통령 암살 후 흡사 무정부 상태와 같은 혼란이 이어지며 갱단의 폭력도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전날 포르토프랭스의 미국대사관 밖에는 시민 수백 명이 몰려들어 아이티를 탈출하고 싶다며 망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30대 시민은 AP에 "경호원이 있는 대통령도 살해됐다. 누군가가 날 죽이려 들면 난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혼란을 통제할 국정 책임자도 사실상 공백 상태다.
모이즈 대통령이 사망한 후 클로드 조제프 임시 총리가 전면에 나서 국제사회의 지지도 받았지만, 정통성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모이즈 대통령 사망 직전 임명한 아리엘 앙리 총리 지명자는 자신이 적법한 총리라고 주장하고 있고, 전체 30명 중 10명만 남은 상원은 헌법 규정을 들어 조제프 랑베르 상원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아이티에선 정국 혼란 속에 의회 선거가 제때 치러지지 못해 하원의원 전체, 상원의원 20명의 임기가 종료된 상태다.
조제프 임시 총리는 혼란 안정을 위해 미국과 유엔에 군 병력 파견을 요청했지만 일단 미 정부는 파병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미국은 아이티 상황을 분석하고 지원 방안을 살펴보기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 관계자들을 이날 아이티로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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