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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 ④ 유례없이 '현금 추적권' 갖게 되는 인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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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 ④ 유례없이 '현금 추적권' 갖게 되는 인민은행
익명성도 존중한다지만 '발자국' 남아…당국이 필요할 땐 추적 가능
해외거래까지 손에 넣을 수도…기축통화국 미국도 못 누린 전례없는 힘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관계 법률과 감독 당국의 요구, 국가 표준에 따라 다음의 경우 당신의 사전 동의 없이 고객 정보를 (타 기관과) 공유하거나 송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은행)가 이행해야 하는 법규상 의무와 관련된 때. 국가·국방 안보와 직접 연관된 경우. 공공 안전·보건이나 중대 공공 이익에 관련된 경우. 공공 이익과 관련된 통계 연구에 필요할 때…."
중국의 한 은행이 제공하는 디지털 위안화 서비스 계약서 말미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 부분에 포함된 말이다.
연합뉴스가 계약서 전문을 직접 확인해보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 다양한 상황에서 고객 정보를 당국에 넘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보통의 중국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채워진 이 계약서 내용 전체를 꼼꼼히 읽어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 '통제 가능한 익명성' 보장하겠다는 중국
현대의 어느 국가에서나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현금은 일단 은행 창구를 벗어나면 당국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중국에서 향후 현재의 현금을 대체해나갈 디지털 위안화가 전면 도입되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현금 흐름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인민은행이 중앙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 기록이 인민은행 전산망에 고스란히 쌓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현금 추적권 확보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던 일이다. 따라서 디지털 위안화 도입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통제 가능한 익명성'(可控匿名). 인민은행이 통제와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겠다면서 내세우는 구호다.
조고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지난 7일 발간된 '중국 디지털 위안화 추진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은 프라이버시 보장과 자금세탁·탈세 등 불법 행위 근절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통제된 익명성'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민은행도 디지털 위안화가 추적이 가능하게 설계됐다는 점은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디지털 화폐 연구소장은 작년 6월 반부패 기구인 공산당 기율검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디지털 위안화는 기본적으로 실명제로 운영되므로 부패·돈세탁 사건 조사와 자금 추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신분증 없이 전화번호로만 개통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익명이 보장되는 소액 거래 전용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도 범죄 연루 의심 정황이 있을 땐 '필요한 법률 문건'을 바탕으로 거래를 추적해 불법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결국 인민은행의 기본 입장은 평소에는 사생활 보장을 위해 거래를 상시 감시하지는 않지만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전산망의 기록을 열어볼 수 있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통제'와 '익명'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 사이에서 방점은 통제 쪽에 찍혀 있는 것이다.
그간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추적이 어려운 현금은 철저한 경제 사생활의 영역으로 간주됐다.
그렇기에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도입은 과거 대문 앞까지 설치된 CC(폐쇄회로TV가 집 안까지 들어온 것에 비유할 만하다.


◇ "2029년 중국인 70% 디지털 위안 쓴다"
안 그래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빅 브러더'에 비유될 정도로 강력한 중국 공산당의 사회·경제 통제력은 디지털 위안화의 도입으로 더욱 막강해지게 됐다.
당장 디지털 위안이 지폐나 동전으로 된 위안화 현금을 모두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가 전면 도입되더라도 지난 5월 말 기준 8조4천억 위안(약 1천489조원)에 달하는 본원통화(M0) 중 극히 일부부터 디지털 위안화로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앞으로 디지털 위안화 대체 속도는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 중국은 거대한 사회 변화와 관련된 정책을 시작할 때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일단 방향이정해지면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작년 11월 펴낸 보고서에서 2029년이 되면 중국인의 70%가 디지털 위안화를 쓰게 된 가운데 디지털 위안화 총발행량이 1조6천억 위안에 달해 본원통화의 15%가량까지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간이 더 흐르면 디지털 위안화의 대체 비율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극단적 가정을 해 보면, 먼 미래 중국이 모든 현금이 디지털 위안화로 바꾼다면 인민은행은 모든 위안화 현금 흐름을 언제든 내려다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갖게 된다.
물론 디지털 위안화가 '감시' 측면에서만 새로운 효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본격적인 디지털 위안화 시대에 접어들면 각종 부패·경제 범죄가 크게 위축되는 효과 외에도 인민은행은 시중 유동성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해 더욱 효과적인 통화 정책을 펼 수 있게 된다.
또 향후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보편화되면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빈곤층, 이재민, 농어민 등 특정 지원 대상에 곧바로 지원 자금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 재정 집행의 효율성을 크게 제고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작년 말부터 중국은 여러 시범 도시에서 추첨을 통해 시민 수만명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무상 제공하는 행사를 여러 차례 벌였다. 이런 방식은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진행 중인 재난지원금 지원 사업 같은 곳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소수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중국의 여론 지형상 이와 같은 디지털 위안화의 장점은 크게 선전되는 반면 우려의 목소리는 거의 표출되기 어렵다.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지난 2일 중국발 기사에서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시험을 가속하고 있지만 사생활 보호에 관한 우려가 계속 남아 있다"며 "일부는 이용자 데이터가 오용될 것을 두려워하는 반면 일부는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이 금융 범죄와의 싸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 '중국 방식' 경계하는 미국 연준
중국의 빠른 법정 디지털 화폐 도입 움직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을 강력히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에서 법정 디지털 화폐를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 운영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지난 4월 "빨리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며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통화(방식)는 이곳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향후 법정 디지털 화폐의 구축 분야에서도 통치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질서와 전통적으로 국가의 역할과 시민의 권한 사이에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등 서방 세계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질서가 쉽게 어우러지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간 '화폐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말까지 나온다.
디지털 위안화를 어떤 원리로 작동시킬지는 중국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문제다.
그렇지만 위안화 국제화를 도모하는 중국이 향후 사용 편의성을 앞세워 디지털 위안화의 해외 사용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욕을 보인다는 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외부 세계'도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의 성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바람대로 앞으로 많은 외국 기업과 개인들이 디지털 위안화를 쓰게 된다면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의 통제권은 중국 국경을 넘어 세계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해외로 나간 자국 통화를 누가 얼마나 가졌는지, 어디에 썼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는 권한은 현재의 기축통화국인 미국도 일찍이 누려보지 못했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라는 첨단 무기를 통해 앞으로 세계 어느 패권국가도 가져보지 못했던 전례 없는 힘을 손에 넣을 가능성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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